의사결정 체계의 새로운 방향 정립이 필요하다
의사결정 체계의 새로운 방향 정립이 필요하다
  • 승인 200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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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고 김호길 총장의 6주기를 맞이하여 그 분을 추모하는 조촐한 행사가 있었다. 행사에 참여하였건 그렇지 않았건 그 분이 포항공대의 현재가 있을 수 있게 하신 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런 제도와 의사결정에 대한 관행도 없었던 때부터 오직 대학 책임자의 리더십과 이에 대한 신뢰로서 포항공대 발전의 기반이 구축되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여러 해가 지난 지금에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지금보다 좋은 여건이 아니었음에도, 모두가 포항공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설레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대학 규모의 증가와 교육과 연구에 있어서 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학 구성원들간에 문제 인식 및 시각의 차이, 해결 방안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불신의 폭이 커져가고 있다. 본부 행정 책임자들 나름대로의 희생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교수들의 불만족과 불신은 더 커져가고 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의 구축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불만의 목소리는 더 많아지고 있다. 직원들을 위한 제도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과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의 점검과 개선을 위하여 1999년도 8대 교수평의회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검토 및 개선 요구’를 제기한 바 있었으나 현 제도의 운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본부의 판단에 의하여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던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으나, 한가지 공통점은 대학책임자들을 비롯한 구성원들 각각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주장하지만 서로간 이해의 폭이 자꾸 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포항공대를 사랑하거나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학 본부의 결정과 판단만으로는 좋은 아이디어와 계획은 혹시 가능할지라도, 모두의 참여로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고 있다. 이제는 개교 초기의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여야 할 때이다. 김 총장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던 독단적인 의사결정 관행은 더 이상 우리 현실과 맞지 않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목표를 세우더라도, 구성원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면 그 목표는 이룰 수 없을 뿐더러 추구할 사회적 가치도 없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근본적으로 우리 포항공대 사회를 재점검하고, 의견을 결집하고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장기적인 비전과 정책에 대한 신중하고 포괄적인 의견 수집과 결정을 수시로 제기되는 운영차원의 문제에 대한 집행부의 융통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주요 정책 결정과 수행에 대한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적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제는 본부 책임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을 줄이고 문서와 논리성과 공감대를 기본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또한, 불만족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시 검토되고 이들을 이해시키어 동참하게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번거로운 듯이 보이는 이와 같은 과정들을 통하여 구성원 모두가 포항공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인식을 공고히 하고, 더욱 학교 사회에 애착과 사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최고 책임자인 총장의 손과 발을 묶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자. 애써 만들어진 제도와 규정이 몇 번 시행도 되기 전에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에 의해 표류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 교수평의회에서 이와 같은 장기적인 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와 대안 제시를 위한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시기적으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또한, 대학책임자들이 이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의 학교 현실만을 고려한 임시처방이 아니라, 선진 대학들의 제도와 우리 현실을 광범위하게 고려하여 포항공대의 한 차원 높은 도약에 발판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포항공대 구성원들은 당장에 자신의 이해 관계가 없다고 무관심할 게 아니라, 애정어린 관심으로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참여가 필요하다. 이제는 소수의 리더들과 다수의 무관심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무기력한 사회가 아닌,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모두가 희망과 설레임으로 다시 도약하는 새로운 차원의 대학사회를 이루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