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회복의 길
신뢰회복의 길
  • 승인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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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7월 말이면 제 3대 포항공대 총장이 취임한 지 만 2년이 된다. 작년의 두뇌한국 (BK21) 강풍, 극한적 노사대립, 계약제/연봉제 갈등에 이어, 올해에도 쌀사기, 주방기기 고가구매, 정년보장 및 인사투명성, 교수서명 파동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식비인상 및 전컴특차 논란, TIMS게시판 논란과 학생 징계, 일본어강사 관련 학생 서명운동 등 학내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러한 갈등의 해결 과정에서 대학 본부, 평교수, 학생, 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 간에 불신감은 더욱 팽배해졌으며 “본교가 개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인식이 학내에 확산되고 있다.

개교 이래 지난 14년간 본교는 비약적인 양적, 질적 성장을 구가하였고 이 과정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불신감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다. 대학과 같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으며, 필연적으로 양보와 타협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설득과 대화를 통하여 다수로부터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바탕이 깨지면 “신뢰의 위기”를 맞게 된다. 최근 학내의 신뢰상실에 의한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난 수년간 학내 정책결정 및 집행, 여론 수렴 과정에서의 구조적 문제구성원간 대화의 부재로 인해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현재 본교의 여러 외형적 지표가 아무리 좋게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작금의 난국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외환위기 직전 “한국경제의 fundamental은 튼튼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으며 결국 우리 나라는 IMF체제를 맞았다. 최근 대우, 현대 등 재벌기업의 해체위기도 기업구조와 최고경영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상실 문제를 “일시적 자금위기”로 치부하려는 안일함에서 비롯되었다.

신뢰의 상실은 정보흐름의 왜곡에서 시작한다. 쌍방간 정보흐름이 막히면 의혹과 오해가 생겨날 수 있고, 대화를 통해 이를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자가발전에 의한 증폭이 일어나게 된다. 최근 서로 다른 진실의 자락을 붙잡고 벌어지는 치열한 학내 공개공방전도 관련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간에 상호불신을 급격하게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한번 신뢰가 상실되면 그 회복이 매우 어려우며 오랜 시간에 걸친 뼈를 깎는 노력을 요구한다. 신뢰회복을 위한 단순한 겉치레나 주먹구구식 일회성 조치와 같은 대증 요법은 신뢰상실의 병세를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우리 모두 참담한 심정으로 우선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학내 불신의 근원과 대학의 환부를 직시하고 그 근본 처방을 모색하여야 한다. 대학 본부는 겸허한 자세로 이에 대한 학내구성원들의 여론을 수렴, 반영하여야 한다. 또한 대학의 다양한 정보공개와 진실규명을 통해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현 대학 상황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넓혀 나가야 한다. 아무리 기본 취지가 좋더라도 일방통행식 정책결정과 무리한 집행은 구성원들의 반발을 낳게 된다. 온라인 언로의 역기능에 대한 비판에 앞서 네티즌이 준수해야 할 규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학내의 다양한 off-line 언로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앞세워야 한다. 학내 구성원의 징계에 앞서 관련당사자에 대한 설득과 대화에 최선을 다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부단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구성원간 합의를 모색하고, 합의 사항의 철저한 이행을 통하여 신뢰회복의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포항공대는 개교 14년만에 아시아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한 데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10년 안에 MIT 수준의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본 대학의 기초는 튼튼하며, 우수한 인적자원에 바탕한 발전 잠재력도 매우 크다.

그러나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난관을 넘어 궁극적 목표에 이르기 위해 우리의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하나의 용광로에 녹여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우리는 무엇보다도 대학 구성원간 신뢰회복에 앞서야 하며, 대학본부와 대학 구성원 모두가 각고의 노력으로 불신의 시대를 접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