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과학기술 교류
남북의 과학기술 교류
  • 승인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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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반도에는 무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의미 깊은 사건들이 있었다. 6월의 남북 정상회담과 뒤이은 광복절의 남북 이산가족의 첫 상봉이다. 이 일들은 한민족이 외세에 의해 겪은 처절했던 이념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픔을 반 세기 만에 우리 손으로 감싸려는 화해의 몸짓이자, 분열을 넘어 민족통합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걸음의 시작이었다. 새싹처럼 어린 얼굴로 헤어졌던 이들이 이제는 백발이 되어 서로를 만나 부둥켜안고 주름진 얼굴에 눈물을 비비는 모습에 며칠간 전 국민이 같이 흐느꼈다.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 볼 때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1970년에 동서 양 정상이 만난 후 19년의 세월을 거쳐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 이보다 길던 짧던 간에 한번도의 통일은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또한 통일 후의 보다 발전된 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지금부터 장기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국민의 공감대에 따라 정부 각 부처에서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마련 중이라 생각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남북 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관광 교류, 통일 음악회 개최, 올림픽 남북 단일팀 출전 등을 포함한 문화, 예술, 스포츠 교류가 거론되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의 청사진도 제시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발달한 남쪽의 생산 및 영업기술과 북쪽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할 경우 얻어질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남한의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무엇인지 다시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 후 남쪽 기업인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북쪽의 노동자가 싼 임금으로 품팔이하는 것이 민족의 화합인가? 또는 이와 반대로 남한민들의 세금을 올려 북한민들이 거의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하자. 과연 이러한 체제로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통일국가를 지속시키며 또한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독일의 경우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구 서독인의 메르세데스-벤츠 생산라인에서 구 동독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나 이들로부터의 생산성은 낮은 반면 불만은 높다. 서독측이 지출한 막대한 양의 동독지역 재건비용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한반도에서도 예견되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한 교훈은 아마도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후 피폐했던 남한 경제가 지금의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은 외국의 구호품 물량공세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국민들이 열심히 흘린 땀의 대가였다. 한반도의 빈약한 자연조건을 딛고 일어선 것은 한민족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배출된 고급 인력들이었다. 민족화합의 중요 과제가 북측의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데에 있음을 보여주는 전례이다.

북측의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는, 여러 분야 중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과학기술력은 21세기에 국가를 재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주의에 익숙했던 북한민들이 이념과 체제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 반면, 과학기술력은 이러한 적응시차와 상관없이 발전할 수 있다. 셋째, 한민족의 높은 교육열은 만주 지역을 포함한 세계 각지 교포들의 높은 학력 수준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우수한 과학 교육의 기회가 북한 지역에 제공될 수 있다면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북한의 청소년들을 우수한 인재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보다 과학기술 여러 분야에서 많이 뒤쳐져 있는 현실은 통일 한국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이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하여 과학기술의 상호 교류를 시작하고, 북한 청소년들에게 양질의 과학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과학기술자 파견 방안 등을 정부 차원에서의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는 통일 시점에서 북한민들이 남한민들에 버금가는 산업 적응능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 방안일 뿐 아니라, 안정된 통일국가의 건설을 한 세대 앞당길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공산국가인 러시아 및 중국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자 교류, 방문연구, 유학 등이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간으로도 이어질 것을 기대해본다. 대학의 문호를 북한학생들에게 개방하는 일에 포항공대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아울러, 포항의 젊은 과학도들도 시야를 넓혀 한반도의 북쪽에서 자신의 미래를 펼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시작되고 있음을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