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마스터플랜 - 사람인가 건물인가
캠퍼스 마스터플랜 - 사람인가 건물인가
  • 승인 200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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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교정을 가을 이맘때 거닐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경치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풍족한 숲에 둘러싸인 건물, 알맞게 자리잡은 나무들이 이루어 내는 고운 단풍, 낙엽이 쌓이는 들녘 등은 우리에게 모처럼 사색의 여유를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 대학 캠퍼스의 조경이 그동안 세심한 배려에 의해 조성되어 왔음을 짐작케 한다. 이공대학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교정에 삶의 여유를 심어주고 있다.

그동안 교정에는 대학의 발전과 더불어 많은 건물들이 새로이 들어서 왔다. 특히, 최근 포항제철의 지원에 의해 학술정보관, 국제회관 등을 포함한 일련의 건물들을 새로 짓기로 한 결정은, 포항공대의 오랜 숙원사업이 현실화되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기쁜 일이다.

대학의 중요 시설들이 들어서는 이 시점에, 우리는 앞으로 캠퍼스의 발전방향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원칙으로서, 먼저 건물의 외형적인 규모보다 대학 구성원들의 생활공간으로서의 효율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의 효율성을 위하여 강의실 및 실험실들은 학생들의 수강이 용이하게 이루어지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연구의 측면에서 학술정보관, 즉 도서관은 학술자료의 검색 뿐 아니라 연구자들 간에 효율적인 학술정보 교환의 장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일과 이후에 시간을 보내는 기숙사 및 연구원 숙소는 마치 자기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십여년간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온 포항공대의 마스터플랜 수립 및 건물 확장 역사를 돌이켜보면, 위와 같은 생활공간으로서의 효율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초기 캠퍼스 설립 이후의 첫 확장은 북쪽의 연구실험동 건축이었다.

이곳에 기계과, 화공과, 산공과의 일부 연구시설이 들어섰으며, 이어서 화학관과 생명과학관이 이곳에 추가되어, 이때부터 대학 캠퍼스는 남북으로 갈라진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기초교육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 화학과와 생명과학과의 이전은 학생들에게 수강 선택의 폭을 좁히는 커다란 장벽이 되었다.

이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교내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나, 원천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한번 잘못 들어선 건물이 대학 운영에 비효율을 야기하고 있는 예이다. 남북 캠퍼스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치더라도, 이러한 전철을 다시 밟지않도록 새로운 캠퍼스 마스터플랜에서는 모두의 지혜를 동원하여 현명한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신축 예정 건물들 중 학술정보관은 대학의 이념적 상징이 되는 건물이며, 또한 여러 사람들이 소장된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체 캠퍼스의 중앙에 해당하는 78계단 위 운동장 부근이 아마도 최적일 것이다. 기초과목 강의를 위한 대형강의실이 건축에 포함된다면 이 또한 이 부근이 바람직하다. 기숙사 및 연구원 숙소는 점차 인근 주택가 경계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제회관을 구 인화단지에 짓는다면, 기숙사와 국제회관이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효자시장과 지역적으로 연계될 수 있어 학생 및 연구원들에게 보다 열린 생활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축 건물들의 위치 선정은 그동안 외부 용역에 근거한 마스터플랜 작성과정에서 수차례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십분 참조하여 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형편상 모든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일단 제대로 된 계획을 수립하여 건물 하나씩 이라도 순서대로 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건물의 양적 팽창에 너무 조바심을 갖고 매달려 온 것이 아닌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학술정보관 및 일련의 건물들은 우리의 오랜 희망사항이었으며 금번의 신축계획은 단비와 같은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건물을 한 번 잘못 지어 놓으면, 거꾸로 건물이 우리의 행동양식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캠퍼스 남북 분단에서 상기해야 한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건물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효율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람을 위한 계획이어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일을 전체적으로 조화된 캠퍼스를 만들어가는 첫 단추로 삼기 위해 장기계획을 다시 차분히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난개발 형식의 캠퍼스 확장이 최선은 아니다. 적절히 수립된 계획하에 교정에 대학의 연륜과 더불어 건물이 하나씩 채워지고, 이렇게 이룩한 포항공대 캠퍼스에 가을의 정취 뿐 아니라 먼 훗날 우리 삶의 향기까지도 배어있도록 하고픈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