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21세기를 여는 시민들의 ‘힘’] 과학문화 NGO의 현실과 이상
[NGO, 21세기를 여는 시민들의 ‘힘’] 과학문화 NGO의 현실과 이상
  • 이원근 / 사이카페 상임대표,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
  • 승인 200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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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의 괴리 극복 위한 운동

과학문화운동은, 여타의 시민운동과는 그 성격 면에서 다소 다르다.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생활을 무서운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문성과 난해함 때문에 과학과 대중사이에 이해의 괴리가 깊어 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동하였기 때문이다. 다분히 계몽적인 성격이었으므로, 정부차원에서 주도되었고 친정부적인 성격이 강하게 뿌리내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시민의 입장에서 멀어져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단체가 과학의 대중화라는 부드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런 태동의 성격 때문이다.

그 이후, 차츰 과학기술의 선/악 양면성이 분명해지고, 사회, 문화, 환경적인 영향에 대한 염려가 증폭되면서, 점차 정부주도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과학문화운동에 대한 회의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최근 몇 년 사이에 비판과 감시를 목적으로 하는 개혁적인 시민단체도 하나 둘 생겨나게 되었다.

과학자들의 소극적 태도

그러나 아직 과학기술문화운동이 활성화되기에는 그 토양이 너무 연약하고,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해 있다. 다른 분야의 시민운동과 비교하여, 일단 참여도 면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반대중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을 불참의 이유로 든다. 당장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핵심으로 협조해야할 과학기술자들의 소극적이고 냉소적이며 자기방어적인 태도는 가장 큰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대중활동에 참여하는 과학기술자를 일컬어, "연구는 안하고 외도한다"는 그릇된 인식도 적지 않다. 연구밖에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현상 때문에, 사농공상의 관념에서 오는 천시의 눈길이 종식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특히, 많은 단체를 장년이나 노년층이 주도하고 있어, 실제적인 추진력이 되어줄 손발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사제지간의 수직적 맹종관계와 과학자와 정부의 수직적 관리관계도 과학자의 언로와 개혁활동을 막는 독소가 되고 있다. 개혁적 발언이나 활동에 참여할 경우 정부의 예산을 이용한 보복을 두려워하는 과학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정치참여가 희박한 것도 아마 이러한 사회구조적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과학문화 시민운동의 시작은, "굳게 닫힌 대화의 문을 여는 것"이다. 과학자와 비과학자간의 허심탄회한 양방향 대화는 곧 과학이 문화와 융합되는 첩경이며, 시민참여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행동이 최우선이다. 이미 단절된 대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과학자의 난해한 정보를 대중이나 비전문가가 알 수 있는 쉬운 형태로 전환해서 전달하는 중간 매개자 또는 해설가의 발굴과 양성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과학문화운동의 기초 토양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관련 이슈가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노출이 필요하다. 관련 과학자들의 참여와 협조는 필수적이다. 노출된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서는 대중매체의 활용이 최선이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언론의 주목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재미없고 어려운 과학을 대중화하는 전략과 수단의 개발도 필요하다. 일단 공론화된 이슈에 대한 국민여론은 상시적으로 수렴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발전방향이 결정되고, 각종 평가와 건설적인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여민주주의적 과학기술 환경이다.

과학문화는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과학문화시민운동을 통하여 추구할 것은, 인류의 생활을 결정 짖는 과학기술의 흐름과 지식정보를 전체 사회에 원활하게 유통되게 하고, 나아가 전체 시민의 의지와 무관하게 과학기술자와 정부의 독단으로 전체 사회와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는 상황을 최대한 막는 일이다. 동시에 정부와 과학기술자들의 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등 과학기술자들의 권익과 연구환경의 최적화를 추구해야 한다. 과학문화는 행동(삶)이다. 지금까지 과학문화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공허한 주장이나 현실성 없는 학문적 탐구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