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종결을 보며
이라크 전쟁 종결을 보며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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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수학자 죤 내쉬의 정리에 의하면 남이 뭐라 하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임은 각 게임참가자가 개인적으로 방법을 바꾸어 봐야 더 좋아질 수 없는 식으로 할 수가 있다. 즉 내쉬의 균형점이 존재한다. 이것은 단위구를 단위구로 보내는 연속함수가 위치를 보존하는 점을 가져야 한다는 수학자 브라우어의 부동점 정리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내쉬 균형이 게임 참가자 집단에게 재앙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다시 말하면 멸종, 혹은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방법은 없다. 그것은 유엔과 같은 타협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우연으로 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전쟁이 일어나지만, 그 과정은 전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인간 군집을 포함한 초유기체의 생존을 위하여 채택되는 전략에는 전쟁, 구조조정과 같이 자기파괴의 형식을 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에 과도한 경쟁을 해소하는데 유용하다. 자기파괴에 참여하는 개체의 전형적 행동양식으로는 과격성에 따라 삭발, 단식, 국적포기, 할복, 분신, 자살공격 등을 들 수 있다. 숭고한 이념이 개체로서 갖는 두려움을 없애고 전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집단이 분비하는 신호라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이 신호는 암호화되어 있지만 이것을 푸는 열쇠는 항상 존재한다. 기생생물인 회충, 촌충, AIDS, SARS는 암호를 자주 바꾸어 숙주의 면역체를 따돌리거나, 가짜 신호로 속일 수도 있다.

컴퓨터 물리학자 란다우어의 정리에 의하면, 계산에 필요한 최소에너지는 존재하지 않고 두 체계 사이의 정보교환은 에너지 손실이 없이 가능하지만, 정보를 지우기 위하여 필요한 에너지의 최소량이 존재한다. 게다가 최소에너지의 크기는 정보의 종류와 정보를 지우는 방식에 상관없이 결정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무기의 실제 존재 여부를 모호하게 해두려 애쓰는 데는 상대가 나의 뜻을 반대로 알거나 정확히 알기 어렵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략적 이유가 있다. 이것은 모호한 정보를 흘리는 수법이며, 숙주를 지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주체사상의 실현을 위하여 그간 북한동포들이 기왕에 치른 대가에 더하여, 앞으로 신용 회복을 위해 치뤄야 할 대가를 김 위원장 마음대로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변수가 방정식의 수보다 많으면 몇몇의 변수는 다른 변수들의 종속변수가 된다. 이것이 음함수 정리이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방송대담에서 미국 중부군 사령관 토미 후랭크스는 내쉬 균형과 음함수 정리를 써서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과 미군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후랭크스의 정리에 의하면 기생생물은 항상 존재한다. 컴퓨터를 포함한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은 기생생물의 계속적인 위협에 맞추어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의 위가 고향인 어떤 기생충은 소의 몸 밖으로 나왔지만 번식을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개미의 몸에 들어간 그 기생충은 개미에게 어떤 황홀한 신호를 보내서 해질 무렵에 소가 좋아하는 풀잎 끝에 올라가서 나를 찾아 올 누군가를 기다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 수 있다. 이튿날, 햇볕에 몸이 뜨거워진 개미는 풀잎 위에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놀라고 쑥스러워 하면서 얼른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어제 밤에 왜 그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 공보장관 알 사하프 장군이 아랍 공영방송에서 “미제국주의 군대는 어린아이까지 살해하는 짐승들이며, 미제에게 이약하게 대드는 후세인 대통령은 줏대 있는 지도자이고, 임신부까지 자살공격에 가담하고 있고, 양키 헬기는 소총으로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고, 현재 공화국 군대가 양키 군대를 유인 포위하여 바그다드에서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타격하기 위하여 모처에 집결해 있고, 위대한 정의는 승리하며, 바그다드가 양키군대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던 도중에 갑자기 TV에서 후세인 동상이 넘어지며 전투가 끝나고 말았다.

이라크의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가 미영군의 공격에 3주만에 아주 자취가 없어지고 마는 엄중한 현실을 우리는 목도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전투기는 떠보지도 못했고, T 72탱크는 운전병을 찾을 수 없었고, 아부라함 탱크는 어떤 무기에도 깨지지 않았고, 전투 개시 즉시 내 위치좌표가 장입된 폭탄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충성스러운 공화국 수비대는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일을 한다. 소통할 수 없는 코드는 코드가 아니다. 충성심도 코드이며 이것은 차별적 대우를 통하여 소통한다. 반대급부를 담보받지 못하는 충성심은 밥풀로 붙인 충성심이다.

미국의 침략으로 시작된 43일간의 이라크 전쟁은 끝났다. 전쟁의 희생자들을 동정하고, 이것을 자행한 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전쟁의 파급효과를 고려하기에 앞서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다. 파병은 우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으며 수구세력에게 환영을 받았다. 기득권에 접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크게 고전하리라고 믿은 사람들은, 정의가 어디에 숨어있었건 간에, 이번에 단단히 헛짚었다. 감상에 이끌려 현실을 보려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는 법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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