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21세기를 여는 시민들의 ‘힘’] 국경을 뛰어넘은 지구촌 연대
[NGO, 21세기를 여는 시민들의 ‘힘’] 국경을 뛰어넘은 지구촌 연대
  • 김 석 /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 승인 200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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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민중은 누구인가? 그것은 인류 전체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말을 이렇게 돌려 표현해 본다. 냉전 시기 정치적 대립의 산물인 ‘제3세계’라는 말의 실질적인 의미는 탈각되었지만, 이제 다시 지구적, 정치경제적 차원에서의 ‘제3세계’를 주목한다. 제3세계는 제3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시민들, 이들 모두가 존재하는 곳이 지구적 제3세계인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배제된 자들의 투쟁이 잉태된다. 국제연대 투쟁은 바로 배제된 자들의 연대 투쟁이며, 이어야 한다.

지난 시애틀과 워싱턴, 프라하의 국제 행동을 계기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반자본주의 국제연대 투쟁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지원금융거래과세연합(ATT AC)은 핵심적으로 금융 지배적 축적체계에 의해 상실된 민주주의적 공간을 되찾기 위해 금융시장의 독재 및 국제 금융의 통제를 위한 공동의 캠페인 및 긴급한 행동을 제안하고 있다.

또,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은 영국에 기반을 둔 ‘주빌리(Jubilee) 2000’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외채탕감운동은 “희년(Jubilee)에는 너희들 가운데 가난한 자는 없을 지어다”라는 성서적 맥락으로부터 출발하였는데 제3세계의 빈곤과 정체의 악순환을 끊는 핵심 고리로서 외채를 지목하고 있다.

작년 11월 30일(N30), WTO 3차 각료회의에 맞춰 벌어졌던 시애틀 행동이 이제 1년이 되어 간다. 누군가는 시애틀에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새로움은, 환경과 인권, 노동을 비롯한 여러 이슈들이 각기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배태하고 있는 모순에서 야기되는 싸움이라는, 그리고 각 투쟁의 상승과 어쩌면 그 생존을 위해 서로간의, 지구적 동맹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확산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일회적, 상징적 의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전망’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을 창출해낸 분위기의 고양, 토양의 성숙을 이야기하며, 체제의 모순과 그에 대한 저항이 나름 분명해지고 그것을 넘어설 그 무언가에 대한 바램이 확산되어 가고 있음을 성과로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이 운동 자체에 내재된 대안성, 즉, ‘탈중심적’이고 ‘자율적’인 성격과 그 급진적 민주주의는 진정한 새로움, 진정한 대안적 변혁운동이 가져야 할 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을 던져 준다.

멀리는 냉전의 종식과 가까이는 소위 아시아 금융 위기로 표면화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는 세계화란 이름의 수사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맞서 싸우는 상대는 그 태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일국적 울타리를 손쉽게 뛰어넘는다. 하지만 우리의 연대는 이제 시작이다. 이런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였다. 시애틀을 비롯한 여러 국제행동으로부터 우리가 확인했던 것은, 세계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자본주의 질서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세계 민중의 광범위한 동의가 제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의 저항이 자본만큼이나 초국적일 수 있으며 또한 초국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어쩌면 암흑과 폭압의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제3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반대와 거부의 목소리는 그 암흑을 밝혀줄 빛일 것이다. ‘우리의 저항은 자본만큼이나 초국적이다’라는 표현 뒤에는 국제적 연대의 절실한 필요성이 놓여 있었던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가능성 역시 함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