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처리를 위한 남북한 통일안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말 처리를 위한 남북한 통일안 마련이 시급하다
  • 승인 200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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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분단되어 반세기 넘게 대립과 이질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우리는 남북간 화해 및 다방면의 교류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민족 동질성의 일차적 관건을 문화에 둔다면 지리적 통일에 앞서 우리말과 글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어제가 한글날이었음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어야 한다.

우리는 때때로 매스컴을 통해 북한의 ‘일없다’(괜찮다), ‘직승기’(헬리콥터), ‘달린옷’(원피스) 등과 같이 생소하고 낯선 어휘를 접하면서 묘한 느낌을 갖는다. 동일한 민족이라도 남북 분단 반세기를 겪은 만큼 언어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남북한 언어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어휘나 맞춤법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음운이나 문법체계에서는 여전히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한 언어의 주요한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어휘이다. 이는 공용어로 채택한 북부 방언, 정치 제도 차이로 생긴 말, 그리고 북측에서 단독으로 이른바 ‘말다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켜 다듬은 말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맞춤법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우선 자모의 순서와 명칭이 다르다. 특히 초성 ‘o’은 소리가 없어 자음 순서에 빠져 있으며 따라서 ‘o’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사전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위치에 배치된다. 한자어 표기는 ‘량심’, ‘녀자’ 등과 같이 거의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모든 단어는 띄어쓰기를 원칙으로 하고 일부 붙여쓰기를 허용하는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전문용어 (‘미리덥히기’), 의존명사 (‘아는것이’), 합성명사(‘경제개발위원회’) 등에서는 반드시 붙여쓴다. ‘아래방’(아랫방)에서와 같이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으나 발음은 대부분 우리와 동일하다. 그 밖에 일부 어미류 등에서 표기상의 차이가 있으며 외래어인 경우 주로 러시아어 발음을 채택하여 ‘뜨락또르’(트랙터), ‘그루빠’(그룹) 등으로 표기한다. 문법체계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통일후 우리말 정보화에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21세기 정보혁명 시대에는 매일 매일의 정보 홍수 속에서 이를 조작, 관리하여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지배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의 기반 기술로서, 비정형화되어 있는 텍스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 획득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처리 기술은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말 정보화 및 기계처리를 위한 많은 연구개발 결과로 키보드는 물론 문자/음성 인식을 통한 한글 입력, 문서 편집 및 철자/맞춤법 교정, 자동 번역, 텍스트 정보 검색, 문서 분류, 문서 요약, 질의 응답 등 다양한 언어처리 관련 소프트웨어들이 상용화되고 있다. 북한의 언어처리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도 간간히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글입력기(IME) ‘단군’, 한글 문자인식기 ‘인식’ 및 ‘매’, 문서편집기인 ‘창덕’, 한-일 번역기 ‘담징’, 컴퓨터보조 일-영 번역기 ‘무지개’ 등이 있다.

남북한 언어의 차이가 점점 벌어져 일반인들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하는 요즘, 단일 민족으로서의 언어의 동질성 회복은 앞으로 양측 당국과 국어학자들이 필히 해결해야 할 크나큰 과제이다. 또한 언어공학 관점에서 우리말의 정보화 추진을 위한 남북간 통일안 마련은 더욱 시급하다. 이 때문에 자모순, 키보드 배열, 문자코드 등에서의 통일안 마련을 위해 지난 몇 년간 양측 학자들이 여러 번 의견 접근을 시도했으나 아직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12일과 13일, 양일간 열리는 ‘제 13회 한글 및 한국어정보처리 학술대회’에서는 한국어정보처리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관련 학회 및 정부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하기로 하였는데, 이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국내 학계의 수렴된 안을 마련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 남북 교류 활성화 분위기에 발맞추어 지난 5월 16일 컴퓨터공학과의 박찬모 교수(대학원장)가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평양정보쎈터(PIC)’와 가상현실 분야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평양정보쎈터’는 ‘조선콤퓨터쎈터’와 쌍벽을 이루는 북한 IT분야 최고의 연구기관으로서 북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창덕’ 및 한글입력기 ‘단군’을 개발한 곳이다. 우리대학도 기계번역, 정보검색 등 언어처리 분야의 최고 연구기관으로 국내외에서 높이 인정받고 있으며, 따라서 향후 남북간 공동연구 합의를 언어공학 부분까지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대학이 우리말과 글의 언어처리 연구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21세기 정보패권 시대에 정보 강국으로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남북이 분단된 현 시점뿐 아니라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우리대학이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