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생의 학업문화] 불평만 쏟아내는 현실이 안타깝다
[포항공대생의 학업문화] 불평만 쏟아내는 현실이 안타깝다
  • 곽근재 기자
  • 승인 2000.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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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것은 관성을 벗어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관성으로 지배되어 오던 몸은 과거의 행동을 답습한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날 때 본능적으로 행하는 반사적인 행동들에서 학습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행동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바로 공부라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관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별히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이러한 관성에조차 심하게 흔들리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문제는 학생들이 점점 더 현실에 지나치게 민감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체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 일상화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예전에 비하여 즉흥적인 행위에만 관심을 나타내고 장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포기하고 있다.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공부에 대한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심각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수강신청 기간, 밤잠을 설치며 학생들은 접근조차 되지 않던 팀스에 접속하면서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한 허무한 전쟁을 치루었다. 그들이 원하는 수업이란 것은 보통 어느 정도 학업부담이 적은 것으로, 듣기를 원하는 수업보다는 학점이수가 수월한 수업이었다.

수강신청 기간 이전에 으레 물어오는 질문이라는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업을 듣기 용이한 수업에 관한 것이라든지 다수에 의해 들려오는 수업의 비교평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 수준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후에 몇몇 사람들이 수강신청을 삭제를 하거나 옮기는 경우를 보면, 이는 대부분 무작정 말만 듣고 신청을 했다가 나중에 시간이 맞지 않는다든지 자신이 원하는 수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수강신청 뿐 아니라 이러한 생각들은 학기 중 수업시간에나 공부, 숙제를 할 때에도 드러난다. 수업시간에 출석을 하기 위해 힘들이지 않고 대출을 한다든지 숙제를 할 때나 보고서를 스스로 쓰지 않고 표절을 하는 행동들은 스스로 하는 진정한 공부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이런 것은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의식에 대한 물음에도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대개의 학생이 수업시간의 내용들을 모두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데도, 담당조교나 교수님에게 물으러 가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같은 현상은 학생들이 문제를 알려하지 않고 답만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 왜 그것이 답인지 모른 채 문제보다는 답에 열중한다. 그리고 한번 찾은 답은 더 이상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다. 공부를 왜하는지 스스로 자각하려는 문제의식에서 답이 나오는 것을 알려 들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문제의 바탕은 학생의 문제로 일방적이지 않다. 이는 학생들의 공부실태에 대한 물음이 학교측으로부터 또한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학교의 학사관련정책은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계절학기 때 수강신청의 선택의 폭은 너무나 좁았다. 계절학기가 아니더라도 학기 중 개설된 수업의 수는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적은 학생 수가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국소적인 문제로 학생들의 권리를 막는 꼴이 되었다.

이에 대해 공부만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반박은 식상함을 감출 수 없다. 또 이에 반박하여 ‘현재 하고 있는 어떤 것’도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식상하다. 어떤 것도 하려 하지 않고 문제의식에 부딪쳐 보려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쏟아내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