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학이 변한다] 20세기 초 세계 최고 수준, 보수적 분위기에 개혁은 ‘감감’
[21세기 대학이 변한다] 20세기 초 세계 최고 수준, 보수적 분위기에 개혁은 ‘감감’
  • 장수영 / 전자 교수
  • 승인 200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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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대학의 전통은 훌륭하며 특히 20세기 초의 대학들의 학문적 수준은 세계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베를린대학(현재 훔볼트대학), 굇팅겐대학, 하이델베르그대학, 뮨헨대학과 라이프치대학 등이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1385년에 설립된 하이델베르그대학이며 두번째가 그보다 3년후에 설립된 쾨른(K ln)대학이다. 그러나 쾨른대학은 나폴레옹에 의해서 1798년에 폐교된 후 1919년에 재설립되었으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하고 무려 21개의 대학을 폐교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의 독일대학들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못하였으므로 1810년에 빌헬름 훔볼트에 의해서 설립된 베를린대학이 오늘날 연구중심대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베를린대학에는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와 철학부가 있었으며 이와 같은 체제는 20세기 초까지도 계속되었다.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는 전문직업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며 철학부에는 역사, 철학, 수학, 물리학, 화학, 언어학 등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20세기에 와서는 철학부가 여러 분야의 학부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공과대학(Technische Hochschule)은 19세기 후반부터 독립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899년부터 박사학위를 수여할 권리를 갖게되었다. 오늘날에는 아헨공대만이 TH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있으며 의대와 인문학부, 경제학부 등을 가진 종합대학이 되었다. 다른 공대들은 모두 Technische Universitat라는 이름으로 또는 일반대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대학교 및 공과대학교가 92개, 신학대학이 40개, 음악, 미술대학이 46개, 그리고 4년제 전문대학(Fachhochschule)이 146개나 있다. 총학생수는 1,832,758명이다. 이중에서 200년 이상된 대학이 25개, 100년 이상 199년된 대학이 16개이며 1960년 이후에 49개의 대학이 신설되었다.

독일대학들은 우리대학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이 몇가지 있다.

첫째, 입학자격이 13년의 교육을 받은 후 고등학교 졸업시험(Abitur)에 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대학재학기간은 원칙적으로 4년반이지만 평균 6년반이 걸린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할 때 받는 학위를 이공계는 디플롬(Diplom), 문과에서는 마기스타(Magister)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미국의 석사와 동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박사과정 학생은 학생이라기보다 상당한 봉급을 받는 조교(Assistent)라고 보며 학점이수소요는 전혀 없다.

넷째,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교수자격학위(Habilitation)를 받아야 강사가 될 수있으며 교수가 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다섯째, 우리처럼 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구별이 없고 교수는 한직급인데 내부적 으로만 C-4, C-3로 구분한다. C-4교수만이 학장이나 총장이 될 수 있고 대개 연구소장을 겸한다. 즉 강사로 있다가 타대학의 정교수로 바로 발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대신 일단 C-3교수로 임명된 사람은 같은 대학내에서 승진은 거의 불가능하고 타대학에서 C-4교수로 초빙되어야 승진이 된다.

여섯째,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신에 일년에 한차례씩 그동안에 배운 것을 한꺼번에 시험을 보는데 과목당 3-4시간씩이 소요되며 오픈북으로 한다. 그러나 책을 찾아 볼 시간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목이 1년씩 계속되므로 배우는 분량이 대단히 많다.
그리고 학생이 시험에 응시할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는 것이다. 화학과에서는 대개 필기시험 대신 구두시험을 본다. 어떤 분야에서는 필기시험, 구두시험을 병행하는 곳도 있다.

일곱째, 수강학생이 많더라도 분반을 하지 않으며 3백명씩 들어가는 대형계단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다. 강의에 출석하는 학생은 50여 명이라도 시험을 보면 2백명이 응시하는 경우도 많다. 출석은 의무사항이 아닌 것이다.

여덟째, 교과서가 없다는 것이다. 그대신 교수가 강의노트를 만들어서 파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나라나 미국대학처럼 교과서를 지정하는 경우는 없다. 19세기 후반 독일대학에서 강의하는 내용들은 바로 최첨단 학문으로서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전통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다.

아홉째, 학생들은 1학기에 4만원 정도의 학생회비와 보험료만 납부하면 되고, 등록금은 전무하다. 즉 대학교육을 국가가 완전히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9학기동안에 졸업하는 대신 평균 13학기가 걸리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거기에 대한 벌칙이 없는 것이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제2차세계대전이전까지 독일대학에서는 박사학위가 첫번째 학위였다는 사실이다. 공대에서는 디플롬이라는 학위가 있었으나 일반대학에서는 마키스타나 디플롬학위가 없었다. 최소 6학기를 공부한 후 박사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막스프랑크, 막스보른, 다비드 힐버트, 하이젠베르그, 볼프강 파울리, 아놀드 좀머펠트 같은 과학자들은 모두 그와 같이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다.수학자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은 19세때 박사학위를 받고 23세때 에르랑겐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교사가 될 사람은 교사국가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바로 졸업하는 것이며 대학에서는 학위를 주지 않는다. 의사도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졸업이며 학위는 별도로 논문을 제출해서 받는 의학박사밖에 없다. 법학과 졸업생들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바로 졸업이며 법학사나 법학석사같은 학위는 없다.

이와 같이 독일의 대학제도는 우리와 크게 다르다. 학사학위만 가지고 독일로 유학을 가면 디플롬과정을 적어도 2~3년 더해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유학을 원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대학에서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날 독일에는 학생이 3만명 이상 되는 대학이 11개나 있으며 쾨른대학의 6만명이 가장 많고 뮨헨대학이 5만 8천명으로 두번째이다. 뮨헨대학에서는 박사학위만도 1년에 1,368명이나 수여하고 있다. 독일정부에서는 대학을 개혁하고 싶어도 보수적인 교수들의 반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