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프랑스에서 바라보는 2001년의 한국 전망]
[특별기고-프랑스에서 바라보는 2001년의 한국 전망]
  • 정성배 / 파리사회과학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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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 버려야

한국은 현재 총체적 위기상황임에 틀림없다. 1997년 환란 이후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 잇따른 권력형 비리의혹, 정치권의 비생산적인 극한 대결, 불안과 분노에 찬 국민의 실망 등의 현상은 위기상황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며 정권자체가 고립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어째서 이러한 상황이 나타났는가? 사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김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정책방향의 문제이다.

총체적 위기의 근원은 무엇인가

첫째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대해서 집권 초기부터 비판과 주문이 있었다. 김대통령은 우선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습관이 있어 어떤 때는 독백으로 마감하는 때도 있다는 것이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반드시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없다. 말이 많은 사람은 경솔하게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정치가였던 드골 대통령은 이 점에 특히 유의했던 사람이다. 대통령이 말이 많으면 평범한 인물이 되어버려 끝내는 권위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말이 아니면 침묵을 지켰다.

또 김 대통령에 관해서 자주 회자되는 소리는 그가 사소한 문제에까지도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드골 대통령에게 배울 것이 있다. 그는 행정부에 직접 간섭한 적이 없었다. 담당 장관을 통해 감독하도록 하고 자신은 국정의 기본방향을 정하고 집행을 감독하는 습관을 지켰다.

김대통령이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말도 흔히 듣는다. 특히 자기 당의 운영에 있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 점에 있어서는 김대통령도 그의 선임자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는 독선적인 지도자는 일반적으로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며 비판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적다는 것이다. 또 김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정운영에 있어서 원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비공식 통로를 선호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의 언행불일치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 싶다. 선거공약은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이 약속을 하였거나 사전발표를 해 놓은 사항 중 실행되지 않은 것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하기는 모든 정치가는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옛날에는 거짓말을 잘하는 것이 정치술인 듯 미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거짓말로 사태를 넘길 수 있다고 정치가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오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국민들이 예전에 비하여 막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거짓말은 곧 폭로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경우에는 국가원수로서 일거일동이 모범적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대통령은 도덕적 차원에서 규탄받을 위험이 있다.

둘째로, 정책방향 문제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경제위기를 이유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행함으로써 1997년 대선때 자신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노동계, 농민을 희생시켰다. 이제 이들과 시민단체 등의 진보세력은 떨어져나가고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부당하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었고 노동자의 53%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경제위기의 주범인 재벌과 정치권에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없다. 또 재벌개혁의 핵심인 소유와 지배구조는 거의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김대통령의 편파적 구조조정 정책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급선무는 신뢰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김대통령은 전술(前述)한 부정적인 정치스타일에서 탈피하여 보다 겸허한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대결보다 협조를 모색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기본적인 개혁을 한가지라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개혁을 구상한다고 한들 이제는 실현할 시간이 없다.

사회보장제도의 중요성

필자는 이 기본적 개혁은 사회보장제도 구축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긴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국가목표로 설정하고 추구하고 있는 민주화의 내용이 이 제도의 존재여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주의의 기반이 없는 민주주의는 알맹이가 없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래의 우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계획을 위하여 진실로 성의를 보인다면 많은 진보세력을 재규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성의표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지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유럽에서 본 것도 사회보장제도의 긴요성이었다. 대다수의 유럽국가들은 대략 15년간의 불경기를 겪어왔다. 그 동안 그들은 엄청난 실업자문제, 빈곤자문제, 사회분쟁문제에 부딪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회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갑자기 신자유주의에 현혹되어 유럽 모델은 실패한 모델이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고 했었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 현재 선진국들 중에서 소득불평등이 가장 극심한 나라가 바로 미국과 영국이다. 영국은 불가피하게 최저임금보장제도를 도입하고 빈곤자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보장제도란 방대한 계획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시작해서 차기 정권들이 계승해 나갈 수 있다면 하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에게 이러한 정치의지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