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
‘선물’이 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
  • 드라마고 / 공공문화 비평가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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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축제는 화려함인 것 같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여야 할 것은 많다. 멋진 휘장과 안내판들로 장식된 입구에 들어서서 갖가지 상점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높고 견고하게,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질 수로 좋은 무대 위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춤과 노래가 펼쳐지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는 좋다, 나쁘다 등의 평가의 자리로 먹고 마시고 있다.

그 화려함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자발성’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아주 자주 듣는 단어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뉴스에는 월드컵 휘장사업 로비를 위해 몇 십억의 돈이 정치권의 이리저리로 옮겨 다녔다고 연일 계좌 추적이니 구속하니 마니라는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니 역시 화려한 축제일수록 여운은 아주 길게 그리고, 은밀한 면에서도 지속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돈도 축제를 한다.

월드컵 당시의 하나가 되었던 한국인이라면 정말 국제적인 월드컵이라는 형식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가대표들을 응원하며 승리를 맛보았던 경험은 일생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집안의 울타리를 박차나와 광장과 거리에서 낯선 이웃들과 인사하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사람들은 축구경기의 승리가 마치 자신의 승리인 것처럼, 더욱이 자신이 연호하는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의 승리인 것처럼 느껴 그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 있음에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기억난다.

다시 6월이 오면 빨간 티를 입고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윤도현 밴드의 공연을 보며 함께 노래와 춤을 펼치는 기념의 축제가 아마도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당시의 월드컵 축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우리는 이번에도 자발적으로 축제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왜, 축제에는 돈을 필요로 하고 이것은 욕망과 비리가 뒤따르게 하는 것인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란 과연 광장에 나가 스스로 옷을 사 입고, 멀티비젼을 향해 함께 같은 구호를 외치며 그라운드의 대표 선수들의 승리에 동참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 “과연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모두 승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못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함께 했었다는 그 축제에 이어 “못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축제를 우린 자발적으로 만들고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고민하자면 뭔가 조금씩 어긋난 관점들에 의해 심한 두통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축제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시스템, 사회 구성의 토양에 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학 축제들에서 연예인을 초청하고, 다이나믹하고 버라이어티한 무대를 준비하려고 하는 일부의 시도는 이의 문제와 비슷한 돈과 화려함, 그리고 자발적 동참을 요구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축제는 각기 다른 이유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는 대학이고 당신은 대학생이다. 행사를 위해 대학의 고민과 공동의 기념과 축하의 꺼리를 찾아 이를 함께 나누어 이해하는 과정과 이를 담아내는 형식을 찾지 못한 축제는, 좀 화려해졌고 동시대의 유행을 따른 것일 지라도 그저 위문공연 같은 것이 될 것 같다.

대학 축제의 주체는 당연히 그곳의 사람들이고, 그들의 삶과 생활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거나 되어야 하는 꺼리를 내용으로 구성원들이 참여한 다양한 표현이어야 한다. 서로의 생각과 구상에 대한 이해와 허용의 태도가 있다면, 이 내용은 어떤 표현의 형식과 축제의 구성이라도 기쁜 소통의 축제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지역문화에 관한 문제다.

올해 전주영화제를 하면서 전국각지의 공연단을 초청하느라 그 지역의 문화인들이 소외되고, 초청자들은 돈은 받았으나 낯선 도시에서 무엇을 나누어야 할지 잘 알 수 없는 축제라던가, 자신의 처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념의 노래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초청가수를 초대하여 그에게 찬사와 함께 축제의 중심까지 넘겨주는 지역문화의 후퇴를 삶의 과정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대학에서는 있지 않았으면 한다.

대학의 축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축제의 의미와 내용을 다시 함께 설정하고, 공유와 공동구성 과정의 세련됨, 축제기간 동안 스스로가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하며 나누고, 다른 사람들을 삶에 초대하여 그들의 삶이 돈이 아닌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도록 염려해주는 자세가 있다면, 어떻게든 그것은 당신들의 몫이고 당신들의 축제이며 다른 지역에도 참여와 나눔의 축제가 생겨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선물이란 그것을 받을 대상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갖고 있을수록 선택이 쉽고, 그것을 기념할 이유와 나눌 감정들이 함께 했을 때 축제와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저 비싼 것이거나 화려한 것으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편리한 기쁨에 편승하여 더 많은 정신적인 것을 나누려는 노력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관계의 문화의 거품이 되어 쌓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선물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시대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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