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적 출판의 역할과 의의
과학서적 출판의 역할과 의의
  • 유정우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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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도 글쓰기를 해야하는 이유

하루에도 수 백종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외국 유명한 작가의 번역본이 아니면 국내 독자들로부터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책이 바로 과학서적이다. 과학자들이 쌓아올린 지식체계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개하는 이른바 교양과학서적은 아쉽게도 절대적인 발간수도 적거니와 시장층 역시 두텁지못해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학서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는 왜 필요한 것인가.

18세기 과학혁명 이후 과학이란 학문은 주로 자연현상에 대한 축적된 지식 체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과학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체계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지식체계를 바탕으로 그 지식을 사회에 영향력있는 힘으로 변화시키는 사회화 과정이 바로 현대사회에서의 과학이다. 자연에 대한 지식, 이른바 과학적 지식은 과학의 형성에 있어 필수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로 구체적 형태가 결정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중요한 요소는 과학의 사회화 과정에 관계하는 주체들의 행위와 사회적 조건이다. 이러한 각각의 주체들의 개입이 현대에서의 과학의 의미를 바꾸었고, 현대가 ‘과학의 시대’로 열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의 사회화 과정이 대두되면서 전문 과학자들은 과학지식의 축적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지만 그 사회화 과정에서는 보다 덜 중요한 집단이 되었다. 전문과학자 집단과 더불어 정치, 경제적 파워집단 그리고 일반 대중이 과학의 구현과정에 참여하여 각각의 입지를 다투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사회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 중 파워집단은 과학을 직접적인 정지척, 경제적 이해와 결부시켜 생각하고, 과학자 집단은 과학자체에는 보다 헌신적이지만 그 높은 전문성으로 인해 사회 전체의 견지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 결여되기 쉽다. 일반 대중의 경우 개개인의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과학의 발달 자체를 집단의 이익으로 돌릴 수 있고,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의 이해를 포용한다는 점에서, 집단으로서의 대중은 가장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이해를 갖는다.

이처럼 과학은 단순히 과학자 개인 혹은 과학자 집단만의 지식체계와 지적 호기심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사회와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학문이다. 핵무기 발달, 인간 배아 복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이 개발해내는 과학기술은 단순 지식을 넘어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이며, 하나의 과학지식 발달을 위한 필요한 자원, 인력 배분 등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있어 일반 대중에게 다가서고 과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가장 큰 매체가 과학서적이다. 외국의 경우 스티븐 호킹과 같은 과학자들은 학술연구와 함께 대중과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전문과학자들이 일반인에게 전해주는 과학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의 하나로 사회발전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하에 과학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을 위한 과학서적을 집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과학서적의 입지는 좁다.

과학서적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서적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과학저술이 가져야 할 요소는 학문세계에 대한 기여이다. 따라서 과학자에게 부여된 가장 큰 의무는 글이나 강연을 통하여 자신의 연구결과를 전문가 집단 뿐 아니라 연구결과에 직, 간접으로 영향을 받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야 한다. 단순한 지식체계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 사회화되어 구체적 힘을 나타내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반응을 수용하고 연구결과로 인한 책임도 같이 져야 한다.

이런 과학, 과학의 사회화 과정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과학서적의 대중화가 미약하고 과학의 대중화는 커녕 과학자와 대중간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실정이다. 이 원인을 단순히 경제논리에서 밀리는 우리 과학의 현실과 과학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과학의 소외로 돌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단순한 과학의 소외가 아닌 ‘사회화 과정의 소외’로 과학의 사회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입지를 주장하지 못하는 우리 과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과학서적 저술이 마치 외도처럼 평가되는 우리 학계에서 현실적으로 일반인에게 과학을 알리는 일, 나아가 과학의 사회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힘들기만 하다. 과학기술의 개발에 필요한 자원배분 등의 구체적 결정은 주로 정치, 경제적 파워집단의 이해관계,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대중의 여론에 의해 이루어지고, 과학자들은 주로 그 결정된 틀 안에서만 제한적인 자율성을 부여받는 고급 노동자 비슷한 신세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과학자들이 해야할 일은 사회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과학서적을 출판하는 것이다, 지식 전달과 함께 일차적 과학 지식의 창조자로서 사회화 과정에 우리들의 입지를 넓히고 다시 일반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과학의 사회적 실현과정에서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한다. 과학서적으로 일반대중의 왜곡없는 과학의 이해를 돕는 한편, 자신이 속한 영역의 연구결과를 성실하게 알리고 이와 함께 과학과 사회변화와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과학자에게 있어 서적을 집필해야하는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