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적 활성화를 위한 제언
과학서적 활성화를 위한 제언
  • 문재석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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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침묵한 채 어떻게 남들을 설득할 수 있나

교양과학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해 그 발전 정도나 시장 규모는 턱없이 미약하다. 그것은 다른 이유들보다도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타이틀을 걸고 책을 내면 일반적으로 2천권 수준에서 판매량이 그친다. 일반 도서의 첫 쇄가 3천에서 5천권 수준임을 감안하였을 때 그 수가 크게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재판은 커녕 그 첫 쇄만이라도 다 나가길 바래야 할 정도로 과학서적의 판매량이 부진하다 보니 서점에서 과학 계열책을 받기 꺼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는 서점에 공급하는 가격을 정가의 50% 안팎으로 잡아야만 겨우 진열해 놓을 수 있다고 하니 사태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 볼만 하다. 그나마 진열이 되었다고 하는 책들은 많은 수가 단편적이고 자극적이며 중,고등학생들을 위주로 한 책들 위주이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이공계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학도서를 출판하는 것은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진지하고 심도있는 과학도서를 출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패할 것을 감수하고서 펼치는 일종의 모험이라고까지 이야기하여 왔다. 초끈 이론을 다룬 <엘레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저,승산),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 을유문화사)과 같은 이러한 분위기를 깬 몇몇의 책들이 있었지만 아직 그 수로 전체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러다보니 생계를 유지하는 전문 저술인은 커녕 교수들에게 과학서적 저술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다. 한창 연구에 신경을 쓰고 연구비를 따와야 하는 교수들에게 잘 팔려봐야 천몇백만원 들어오는 과학도서로는 소위 ‘글발 있는’ 교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없다. 교수들의 인식도 문제다. 자신의 연구를 타인에게 알리고자 한다기 보다는 학계의 테두리 안에서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풍토가 교양과학이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교수들 사이에서 책을 집필하는 경우는 ‘할일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 교수는 “정년 보장 받는 사람이나 그런 짓 하는 것이지, 연구하는 사람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연구실적 일변도로 평가를 하는 대학의 임용제도에 그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학계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교수들의 인식이다. 학계 교수들 사이에서 인정을 하지 않으니, 굳이 그것을 대학이나 정부에서 인정을 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수들의 ‘시간 부족’을 빌미로 합리화되는 관심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교수들이 교양과학서적에 지금보다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관료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과학ㆍ기술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이공계에 경제적, 사회적 지원이 뒤따른다는 데에 있다. 과학과 공학의 구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NT나 BT 혹은 그 이외의 과학ㆍ기술 연구를 위한 재정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단편적으로 ‘바이오’하면 생명공학과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이공계 내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이 되고, 서로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일반인들에게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또한 과학도서가 학제간의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위한 도구임도 간과할 수 없다. 한 분야의 권위자가 자신의 분야의 최첨단 지식을 상대적으로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 쓴다면, 다른 분야의 학자들은 이를 이용한 연구를 더욱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공학과 생명과학이 합쳐진 Bioinformatics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 이해를 한 사람이 많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에 올라있는 컴퓨터 공학자가 최신 이론을 생명과학자가 읽을 수 있게, 혹은 그 반대의 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상대적으로 손쉽게 습득하고 이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저술이 자기자신의 연구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학문의 종합적인 발전을 위해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만 이러한 학제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소수의 교수들과 저술인들의 고군분투로 인해 그나마 버텨온 과학서적시장은 다행히도 근래에 들어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다소 희망적이다. 지나치게 어려웠던 순수과학서적과 유치했던 교양과학의 사이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 동안 멀어졌던 독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01년도에 출간된 <과학콘서트>(정재승 저, 동아시아)가 10만부 이상 판매되고, <여섯가지 물리이야기>(리처드 파인만 저, 승산)가 출판 직후 3만부 가까이 판매된 상황은 과거에 비해 독자들의 인식이 많이 나아졌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그런 책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적 저술 인력- 교수들을 포함한 현재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 이공계 스스로 바꾸어 나가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