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도서 활성화 방안은 없나
과학 도서 활성화 방안은 없나
  • 정현석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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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일상이 되기 위한 몇 가지 과제

‘과학책은 안 팔리는 책, 난해한 책’. 우리나라의 과학도서를 바라보는 출판계와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문화 마인드 확산과 과학과 사회를 이어주는데 큰 역할을 할 과학도서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이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 이제 과학 문화가 자리잡아가기 시작하는 지금, 한걸음 더 나아가 과학도서를 활성화하고 과학도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과학 전문 출판사들과 과학 도서 저술가들의 양적 규모가 팽창해야 한다. 현재 과학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들이 있지만 그 규모가 영세하며,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깊은 이해와 일러스트와 사진을 적절히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편집해 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닌 편집진의 부재는 과학도서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우리들이 과학도서를 가까이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전문 과학서적 출판사의 창업 자금 지원, 과학도서 출판 기금의 조성 등의 지원이 있다면 과학출판 여건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 저술 전문가들의 저술활동 여건을 향상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대학에서 연구 실적에 대한 과중한 부담 속에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대학 교수들의 입장을 감안할 때, 교수의 연구실적이나 임용과정에 저술ㆍ출판물을 반영하여 과학도서 저술 활동을 자극하는 방법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한편 우수 과학도서 인증제, 과학 독서상 등의 활성화와 함께 우수 과학도서에 선정된 경우 저술 활동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수준 높은 과학도서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정부가 조성해야 한다. 또 급속도로 변화하는 과학 정보의 특성에 맞추어 과학분야에 대한 저작권법을 재정비하여 국제 저작권에서 분쟁 소지를 줄이고, 과학분야 도서들의 번역물 범람 및 과학 관련 도서출판사들의 과당 경쟁을 방지해야 하는 등의 행정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민간 차원에서도 과학도서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자들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매달마다 과학독서 토론회를 열고 과학서적의 소개 및 서평을 하는 모임인 ‘과학독서아카데미’는 과학도서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이공계 전공 대학생들이 과학도서를 읽고 과학분야의 자유토론 및 과학 관련 글을 쓰는 연합 동아리가 결성되어 이번 달에 첫 모임을 가진다고 하니 그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볼 만하다. 이런 과학도서 및 독서 관련 모임의 활성화는 과학도서 출판에 대한 기폭제가 됨과 동시에 과학도서에 대한 피드백을 통하여 과학도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편 이전에 촉발되었던 ‘게놈’과 ‘지놈’ 용어 문제, 일본식 한자나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제각각으로 번역함으로써 발생한 용어의 혼란에서 드러났듯이, 정확한 우리말 과학 용어의 부재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과학 용어에 대한 부담을 주고, 저술 활동에 있어서도 의미의 정확한 전달에 장애 요소가 된다. 따라서 민간 차원에서 과학 저술 활동에 도움을 주는 우리말 과학 전문 용어의 정리 및 제정 관련 기구 설립도 시급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학도서에 대한 사회 각계 각층의 인식의 전환 및 공감대 형성이다. 과학도서가 단지 ‘과학에 관심있는,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만 읽는 책’이라는 인식이 일반인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한 과학도서의 활성화는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과학독서페스티벌이나 과학도서 읽기 캠페인 등을 통해 일반인들의 과학도서 읽기를 생활화 하고, 흥미 위주의 독서에서 벗어나 과학도서에 대한 관심으로 수준 높은 과학도서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자발적으로 만드는 데에도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이러한 과학기술계의 일반 대중을 위한 저술 활동을 ‘외도’ 수준으로 폄하하는 풍토에서는 미국의 칼 세이건과 같은 전문적인 과학 칼럼니스트는 커녕 수준 높은 과학도서들이 나오기 어렵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일반인들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학문 영역에서만 안주하지 말고 과학도서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과학도서 저술 활동에 심혈을 기울여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사명을 다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그리고 국가 정책 입안자들도 과학계의 지원에서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연구ㆍ개발 투자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과학도서의 활성화와 과학전문 저술가 양성을 위한 정책 및 지원으로 과학도서를 통한 과학문화 마인드 형성에 관심을 기울여 정부가 표방하는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과학도서의 위상이 현재보다 더욱 높아지고, 이공계 전공자들과 과학전문 칼럼니스트들이 대중 강연과 함께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우리들이 수준 높은 과학도서들을 통해 과학에 좀더 친근감있게 다가가며, 과학이 우리들의 일상에서 우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과학에 대한 사회의 인식 전환, 과학 마인드의 확산과 함께 진정한 ‘과학 문화’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