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의 저변 확대를 통해 새로운 방향 모색할 때
과학 기술의 저변 확대를 통해 새로운 방향 모색할 때
  • 승인 2003.03.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담자 소개-

경종민 카이스트 전자전산학과 전기 및 전자공학 전공 교수
조양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질량표준부 부장
정우성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장 / 물리학과 박사과정

△일시 : 3월 20일 (목)
△장소 : 대전 표준과학연구원
△사회 : 카이스트신문사 임영미 기자
△정리 : 카이스트신문사 연지연 기자

사회자 :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이란 기치 아래 과학기술 발전을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크게 동북아 R&D 허브 구축, 지방 과학연구단지의 활성화 등의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이공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정부의 대책을 함께 진단해보자. 또,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엔지니어의 질이 핵심

경종민 : 일단 이공계 기피현상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실체를 먼저 파악해보아야 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작년에 터진 것도,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도 아닌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며,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느 나라든지 의사,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좀 더 편한 직업을 가져보려는 많은 사람들의 욕구가 탈이공계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현상을 분석해볼 때, 가장 큰 원인으로 이공계 사람들의 생산성이 굉장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같은 엔지니어가 옛날에 하루종일 해야했던 일을 요즘은 한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비해 사람들의 수요의 증가는 엔지니어의 생산성의 증가에 못미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시장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일하는 엔지니어들의 숫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농업의 경우를 보자. 과거에는 전체 인구의 60~70%에 이르는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요즘 미국의 경우는 전체의 1.5%에도 못미친다. 그 1.5%가 만들어내는 농산물이 미국 전체를 먹여살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변화 추세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공계의 문제를 양이 아닌 질의 관점에서 따져야할 때가 왔다. 이공계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문제가 아니고 이공계에서 교육시켜서 졸업시키는 졸업생들의 질이 중요한 것이다. 질이 핵심이다. 왜냐하면 시장의 크기가 엔지니어의 생산성보다는 빨리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장에서 창출되는 이익을 이공계 졸업자들이 나눠가진다고 생각하면 받는 경제적인 수입이 법조계나 의사들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엔지니어의 양을 늘리자는 측면에서 대학정원을 늘린다는 등의 대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중에게도 쉽게 다가가야

정우성 : 또한 일단 ‘과학기술은 어렵다’는 국민들의 고정관념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로부터 무슨 과냐는 질문을 받으면 “물리학과다”라는 대답에 이공계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면 백이면 백 “나는 고등학교 때 물리 진짜 못했어요. 진짜 어려워요.”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다들 과학 기술이라고 하면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는 것들만 생각하고, 주변에 널린 게 다 과학기술이고 자연이라는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화두가 되고있는 이공계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도 계속 연구소, 체제, 대학 이야기만 나오는데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더 아래에 있다. 어릴때부터 사람들에게 과학 마인드를 심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호기심 많던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과학자가 되겠습니다”하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계산 위주의 과학 교육에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 둘 씩 멀어지게 된다. 도리어 교육을 안시키는 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와 완전히 과학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구구단 이외의 수학은 머리 아프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조양구 : 과학기술인들도 대중에게 과학기술을 알리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있다. 당장 국가를 위해서 이공계 기피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결국은 자기 밥그릇을 위한 이야기가 될 뿐이다. 월급인상이 급할 뿐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월급이 오르고 경력이 늘면 물론 좋지만, 계속 과학기술 토양을 다지지 않으면 십년 뒤엔 더 큰 시련과 고통을 안게 된다. 그러나 십 년 뒤를 내다보면서 문화 운동에 치중하고, 사이언스 스 타트 대중 캠페인 등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우성 : 분명히 고급인력과 일반인력을 분리하고 질이 높은 교육을 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천 명 중의 한 명의 엘리트를 찾아내고 나머지는 과학기술에 무식하다고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 을 수 밖에 없다. 온 국민이 과학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과학을 어렵지 않은 존재로 친숙한 것으로 여기 는 분위기 속에서 고급 인력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요즘은 ‘호기심천국’, ‘유레카’ 등의 방송 등으로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 문화의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작년 월드컵에 비유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월드컵 기간 내내 귓가를 울렸던 필승 코리아 박수는 사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석규 씨가 나오는 광고 한 번의 효과는 엄청나게 컸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런 식의 문화운동을 통해 활성화 시켜야한다.


▶이공계 내부분위기 바꿔야

조양구 : 과거를 생각해보면, 고려청자에서 이조백자로 한 번에 넘어가고 불교 역사가 갑자기 유교로 바뀌고, 요즘은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을만큼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는 등 극과 극을 왔다갔다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과학기술계에서 어느 뛰어난 천재가 하나 나오면, 급격한 발전을 이루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걸 기대하기 힘들다면, 과학계의 원로들이나 선배를 존경하는 분위기, 후진들이 본받을 수 있는 바탕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

▶본질적 대안이 필요

정우성 : 이공계 사람들은 이공계만 기피의 대상이 되고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불과 몇 년전만하더라도 대학가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논했고, 그 후엔 기초학문의 위기를 논했다. 지금은 이공계만 기피하는 게 아니라 법대와 의대를 제외한 모든 분야가 기피의 대상이라고 불리울 정도다. 왜 우리가이공계를 키워야 하느냐를 먼저 생각해보자.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이공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은 설득력이 없다. 인문학도 충분히 같은 논지를 가질 수 있다. 인문학 없이는 국가를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공계 기피를 해결하자고 논하는 초점은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을 이루자는 것이다. 고루고루 갖춰나가는 원동력을 기르려면 병역 특례를 늘려달라, 정년퇴직 시기를 늦춰달라 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해결책의 본질이 될 순 없다. 정부가 5년마다 바뀌고 있는데 사인함수처럼 똑같은 사이클이 5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여지껏 나왔던 대책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만 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엘리트주의 팽배

정우성 : 과학기술계까지 엘리트주의에 물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대단한 엘리트들이니까 엘리트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엘리트 주의는 체육계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4강 진출, 올림픽에서도 4등을 한 우수국가이고 경제순위는 12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엘리트 체육 위주 체제이다. 우리 주변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즐겁게 펜싱하는 사람을 찾아본 적 있는가? 하지만 펜싱 금메달은 많이 따고있다. 레슬링도 금메달을 휩쓸고있지만 주변에서 레슬링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체육의 목적은 온 국민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의 경우는 생활 체육이 아주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이다. 일본 한 현의 야구우승팀이 우리나라 프로 2군 실력과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프로야구단이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서 일본 한 현의 아마추어팀과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만큼 사회체육이 활성화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은 탄탄한 토대 위에서 체육우수국이 될 수 있었다.

▶조화와 화합의 관점에서

조양구 : 그러나 이런 이공계 기피를 인문계와의 밥그릇 싸움으로 몰고가는 것은 공멸의 길이다. 또한 우리나라에 의사나 변호사 없이 이공계만 꽃핀다고 해서 대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조화와 화합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넓은 시각을 가지고 봐야 한다. 작기 때문에 과거와 역사와 미래를 한 번에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전략이다. 국가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는 전략을 짜서 적절한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경종민 : 그 방법 중 하나는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의대는 공부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비전이 있으니까 가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하는 과정마저 재미가 있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공계 공부는 사실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 재미없는 부분들을 공부하는 내용이나 방법을 개선함으로써 재밌게 바꾸어 나가야한다. 아까 시장이 성장하는 속도가 기술의 생산성의 성장속도보다 느리기 때문에 이공계인의 밥그릇이 작아진다고 했는데 그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공계에서는 시장을 넓히는 것까지 이공계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 것을 프라블럼 파인딩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힘, 에스키모가 냉장고를 쓰면 물개고기를 좀더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줘서 시장을 넓혀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앞으로의 시장 변화 추세를 잘 보고 거기에 맞게 사람들이 살만한 물건을 착안하고 여지껏 누적해온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가지고 구현해 주어야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허나 법 등 문과의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공계의 학문의 원리 등을 인문계통 사람들에게 적용시켜 그 사람들이 이공계 마인드를 가지고 일을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그런 큰 그림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4천만도 안되는 작은 나라안에서 문과 이과 가르고 기초학문, 응용학문 가르면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다. 우리는 합쳐서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나는 대덕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꼭 송도에 IT 밸리를 세워야만 한다면 양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IT 밸리가 송도에 들어오든, 대덕에 들어오든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지역을 분할시켜서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가 이공계 기피를 문과사람들이 거부감느끼게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특화된 분야의 최고가 되자

조양구 : 우리나라는 세계지도에서 한 눈에 찾기도 어려울만큼 참 작은데다 북쪽에 위치해있고 위협적으로 중국이 바로 옆에서 커지고 있다. 일본도 쇠퇴기로 접어든다고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제조업 분야에서 가지고 있는 힘은 막강하다. 이렇게 독특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나라 제도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키려고 한다. 이공계 분야만 하더라도 실리콘 밸리 등에서 시작된 여러가지 혁명적인 도전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한다. 그 결과로 지금 우리나라의 이공계 기술 인력은 IT 전자통신 쪽으로 지나치게 쏠려있다. 대덕 연구단지의 벤처기업 중 70~80%도 이 분야이지만, 미국식 관점으로 보았을 때 진짜 ‘벤처’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기업은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머리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기 많은데, 나는 아니라고 본다. 중국 인구를 고려해보았을 때 우리나라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남한 인구의 세 배인 일본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력도 약하고 인력도 약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특화시킨 분야를 정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한다.

정우성 : 주력할 분야를 정할 때, 이공계인 내부에서도 소규모의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옛날부터 서양식 학문분류체계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분야에 집착한 나머지 남이 연구하는 분야는 아예 내 분야와 다른 것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하곤한다. 그러나 요즘 IT 분야를 빼놓고는 기계공학을 논할 수 없으며, 기계공학도 전자 쪽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조양구 : 나는 현재 전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IT분야보다 기계공학과 같은 분야를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는 기계분야가 오히려 고용창출 효과가 클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IT 업체로 유명한 삼성이나 엘지도 자세히 살펴보면 기계제조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크다. 일본은 IT 업체의 경쟁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계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제조업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인들의 국민성으로 유명한 끝마무리를 야무지게 해내는 경향을 갖고있기 때문에 기계 쪽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계 제품이란 여러가지 부품이 모여서 하나의 기능을 내야하는 것이므로 그동안 쌓은 기술적인 노하우를 활용하면 당분간은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할 때에 중국 기계제품보다 우리나라 제품이 더 인정받게 될 것이다.

▶대학도 경쟁력 갖춰야

경종민 : 우리가 작은 분야에 주력한다고 하더라도 생각은 항상 크게 해야한다. 그래서 인문계와 이공계를 아예 구분한다던지 IT를 다른 분야와 구분해서 이 분야만 살리고 저 분야는 버려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한다. 또한 학교는 교육만 하는 곳, 연구소는 연구만 하는 곳, 회사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이런 고정관념이 팽배한 사회는 경쟁력있는 엔지니어를 배출하기 힘들고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기도 힘들다. 예를 들어 전자과에서 우리가 가르치는 건 전자공학이니까 학생에게 생물이나 기계에 대해 알고싶으면 다른과에 가서 하라는 방식은 경쟁력이 없다고 본다. 또, 국가가 우리에게 이런 연구를 요구하니까 해야한다는 논리로는 어느 학생도 따라오지 않는다. 이공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닌 학생들에게 비전을 줄 수 있어야한다. 이공계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대학에서 교육, 연구 등을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봐야한다. 그래야 경쟁력있는 학교가 될 수 있고,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끌어올 수 있다.

사회자 : 장시간 좋은 말씀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린다. 오늘 나눈 이야기가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