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대중화’ 어떻게 가능한가?
‘과학대중화’ 어떻게 가능한가?
  • 김승환 / 물리 교수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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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대중화 사업의 현실

‘희생’ 요구하는 연구실 바깥 현실이 큰 걸림돌

과학영재교육의 원대한 포부를 안고 설립된 과학고의 우수한 학생들이 꿈을 잃고 치의예과로 진학하고 있다. 작년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우리나라의 이공계 진학률은 중국의 90%에 훨씬 못 미치는 30%수준에 머물렀다. 학생들이 어렵고 돈을 벌기 힘든 기초과학 대신 법학, 의학, 경영학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정부출연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열악한 처우와 신분불안으로 연구소를 앞다투어 떠났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취한 기술사 자격증이 홀대받고 많은 이공계 고학력자들도 변리사 시험으로 몰리고 있다. 사회 여기 저기서 현장의 과학기술자의 사기가 떨어지고 미래 과학자의 꿈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의 관건은 학생과 일반인들이 기초과학에 관심과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과학 자체를 이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러나 과학은 여전히 어려운 대상으로 남아있다. 과학대중화의 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자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널리 전파하고, 과학의 생활화를 통하여 진정한 과학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과학의 대중화가 이룩되어야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자가 우대받게 된다. 하루빨리 과학기술자가 월드컵축구 영웅과 같은 대접을 받고, 과학기술자 출신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지도자로도 우뚝 설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 과학기술자들은 국민의 관심과 지원이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보장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연구홍보와 과학대중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도 전통적인 연구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과학 대중화를 선도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사실 이공계 과학기술자로서 과학 대중화 활동에 함께 동참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한국물리학회의 홍보잡지인 <물리학과 첨단기술>의 편집장으로 매달 홍보잡지를 편집, 발간한다. 또한 한국물리학회 창립 50주년 행사 홍보위원회 간사로서 물리학의 대중화를 위한 여러 행사들을 기획, 주관하고 있다. 최근에 개최한 과학대중화 행사의 예로 “물리와 함께 하는 행성 축제”는 한강 고수부지에서 학생 및 일반인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대의 천체망원경을 이용한 오행성 관측, SF영화속의 물리학, 물리학자와의 만남, 로켓발사 등 다양한 행사로 치러졌다. 또한 “놀이기구의 물리학 체험학습”은 서울랜드에서 약 120여명의 초중등학생들이 참석하여 도우미 선생님들의 지도로 롤러코스터 등을 타고 놀면서 물리를 직접 체험학습할 수 있는 재미있는 행사였다.

위와 같이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 대중화 행사 준비의 가장 어려운 점은 동료 과학자를 설득하여 행사에 동참시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롤 모델들은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중진과학자 또는 젊은 과학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평소 바쁜 연구와 학술활동 일정 때문에 학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한 과학 대중화 행사에 시간을 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특히 과학자들이 처음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 학술행사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참석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많은 준비와 함께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동반된다. 일부 과학자의 경우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약간의 과장된 언행과 일회성 성격이 강한 과학대중화 행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어 참여유도가 쉽지 않다.

우리대학의 경우 국내외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대학이며 정부로부터 많은 연구비 지원도 받고 있어, 과학 대중화에 대한 책임있는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중심대학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많은 구성원들이 과학대중화의 취지에는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활동에 대한 참여에 심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과학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며, 그 씨를 뿌린 사람과 열매을 거두는 사람이 다르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현재의 논문위주의 연구업적 평가체계에서는 과학 대중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희생정신으로 봉사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과학대중화는 일부 활동가의 전유물로 머무를 수 없고, 정부의 연구지원을 받는 모든 과학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혜롭게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기초과학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과학 대중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과학대중잡지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최근 사이언스올제, 사이언스 매거진 등 과학잡지 창간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의 대중화에 따라 사이버 세계가 과학시뮬레이션 등 과학 대중화의 새로운 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한국물리학회 등 과학기술 관련학회에서도 과학 대중화에 발벗고 나섰다. 삼성 등 굴지의 대기업들도 이공계 기피가 가져올 미래기술경쟁력 약화를 우려하여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을 유도하는 특강 등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여러 관계부처도 이공계기피현상의 해소와 과학문화 확산을 위하여, 실효성은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대책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우리 나라의 과학대중화 행사의 시초는 지금으로부터 68년 전인 1934년 과학대중화 운동가 김용관 선생이 주도한 사이언스 데이(Science Day)라고 한다. 그 이듬해인 1935년에는 사이언스 데이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열려 시가행진, 군악대의 연주행사 등 민족운동의 차원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우리 선조의 예지를 본받아 다시 한번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과학을 같이 만들어가야 할 때가 왔다. 이를 위해 우리 현장의 과학기술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과학대중화와 과학문화확산에 동참하기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