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대중화의 길 이제 첫걸음 뗐다
과학대중화의 길 이제 첫걸음 뗐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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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의무는 과학적인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관점에서 사회 생활의 매우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라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은 현대 사회에서 과학대중화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적절히 시사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과 사회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오늘날, 과학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시혜’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크나큰 시대 착오일수 밖에 없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대중화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과학관 건립, 과학축전개최 등의 행사나 전시를 통한 방법과 과학저술과 교육을 통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저변 확대가 그것이다. 먼저 전자인 행사와 전시를 통한 과학문화보급의 현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관은 현재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전의 국립중앙 과학관과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과학관의 2곳이 있으며 총 45개이다. 반면 미국 1천9백50개, 독일 9백13개, 일본 7백94개, 프랑스 5백9개(98년 현재) 등으로 선진국의 경우 훨씬 많은 수의 과학관이 과학대중화에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게다가 그 전시물이나 과학관 운영의 질적 측면에 있어서는 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관의 경우 많은 전시물들이 일본의 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시물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베껴온 것들이라 참신하고 새로운 전시물들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과학 행사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편적인적 수치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선진국들의 과학 경연대회 등의 행사가 가지는 권위와 규모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포항에서 열린 한국과학축전(한국과학문화재단 후원)과 같은 관 주도적인 성격을 띤 것과 휴먼테크 학술대회(삼성)와 회로경진대회(LG)같은 민간기업차원의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또한 우리학교의 이공계학과 대탐험, SEE-KAIST, 전국과학경시대회와 같은 학교나 학회 차원의 행사와 경시대회 등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회들의 대상이 다양하지 못하고 특히,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행사의 경우 중요한 중고교 청소년들을 배제하는 등 과학의 저변을 넓히기에는 역부족이며 각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도 실상을 살펴보면 과학대중화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영국의 크리스마스강연이나 일본의 토레과학재단이 주최하는 과학강연과 같은 권위있는 정기강연도 부재하다. 이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투자, 참여과학자들의 확대와 민간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유도 등의 대안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저술과 교육을 통한 방안도 빈약하다. 우리나라의 과학저술계 수준은 사실상 초보단계이며, 게다가 그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저술도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몇 안 되는 과학잡지나 신문의 과학면에서도 너무나 전문적인 술어를 사용하여 서술한 권위주의적인 기사로 일반인들이 과학을 외면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학 저술인들의 육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험난하다. 대개의 경우 대중화를 위해 과학자들이 과학저술을 하기 시작하면 암묵적인 동료 과학자들의 비난과 질시가 뒤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 김정흠 명예교수는 과학의 대중화운동을 ‘과학지식의 사회환원’이라고 부르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 바 있다.(1997, 과학대중화 심포지엄) 실제 외국의 경우는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파인만, 리처드 도킨스 등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뛰어난 과학 대중 서적을 집필하는 저술가가 있으며, 이들은 각기 과학에 대한 오해를 벗기고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데 있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같은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간에도 서로의 연구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 역시 과학 대중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별한 저술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과학자’들은 청소년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며 이는 일반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학대중화사업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과학 대중화는 위와 같은 어려움과 장애 요인들 때문에 더디 진행되지만 유럽의 경우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대중화를 넘어 과학 정책 결정에까지 시민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합의회의’라는 일반인들이 과학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의 참여의식이 고조됨에 따라 과학계가 대중들에게 좀 더 다가서서 과학연구의 사회적 동의를 얻어야 하는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여러가지 노력들이 시도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로 네덜란드의 대학에서는 이미 70년대부터 ‘과학상점(science shop)’이 시행되어 일반 대중과 지역사회에 직접 접근하는 시도를 펼쳐왔으며 그 결과는 성공적이며 다른 국가들도 이를 모방하는 추세다. 앞으로는 과학 발전이 오도되는 것을 막고 일반인들의 관심을 통해 과학연구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의식있는 과학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학대중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