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란을 아십니까
▶최옥란을 아십니까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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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받은 한 빈곤 장애인의 비극

“저의 텐트농성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농성 결의문에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 창립, 뇌성마비연구회 ‘바롬’ 창립,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등 활발한 장애인 인권운동에 나섰던 고 최옥란씨의 삶은 그러나, 결국 자살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 지 100여일 만에 앓은 열병으로 인해 뇌성마비를 평생 안고 살게 된 그에게 세상은 너무 고달팠다. 지난해 10월부터 실시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월 33만원 이상의 소득자의 수급자격을 박탈하여 생계를 기대어 오던 청계천 도깨비시장의 좌판을 접게 했다. 그러나 그에게 쥐어진 돈은 수급 대상자 지급액 26만원과 장애 수당 4만5천원, 불과 월 30만5천원이 전부였다. 장애인으로서 약값과 교통비만 해도 월 25만원이 넘었던 그에게 도저히 ‘최저생계비’일 수 없었던 액수였다.

한번 내놓은 좌판을 다시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작년 12월, 정부종합청사에 생계비 18만원과 수급권을 반환하고 명동 성당에서 텐트 농성에 돌입,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 투쟁을 벌였다. 또한, 최저생계비 계측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위헌소송도 냈다.
그러나 98년 이혼 후 남편이 데리고 있는 아들을 찾기 위한 양육권 소송을 위해 빚을 져 가면서도 통장잔고를 쌓아오던 그에게 날라든 지난 2월말의 수급권자 재산조사 고지서는 아들과 생계 중 하나를 선택케 종용했고 그나마 어느 하나도 얻을 수 없었던 현실은 2월 20일, 그의 손에 과산화수소수 한 통과 수면제 20알을 쥐어주었다.

한 달간의 치료 끝에 지난 3월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그의 장례 행렬은 경찰의 시내 진입 저지로 노제와 장례식마저 무산되어 그는 생전의 이동권 투쟁을 죽어서도 이루지 못 했다.

그의 죽음은 생계는 물론, 혈육의 정마저 허락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장애인 복지정책이 저지른 범죄다. 그리고 그의 죽음 앞에서도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이 계속될 때 또 다른 최옥란, 소외받은 빈곤 장애인의 비극은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