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리에 신음하는 장애인의 생존권
경제 논리에 신음하는 장애인의 생존권
  • 이현준 /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 간사
  • 승인 2002.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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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무렵이 되면 장애인계는 잔뜩 긴장을 한다. 정치 판도에 따라 장애인복지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제논리에 의해 장애인복지가 억눌려왔기 때문에 민주적인 후보를 통해 복지개혁을 이루려는 것이 절실한 염원이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민주화를 원했던 계층이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소위 문민정부에서도 국민의 정부에서도 장애인복지 정책은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장애인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물론 예전의 경직된 정권에 비해서는 나름대로 향상되었다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장애인은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저소득에 머물러 평균 이하의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인간적인 삶은 기대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생존의 안위를 걱정하며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최저생계비 보장을 앞장서 외치다 생활고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뇌성마비 여성 장애인 최옥란 씨의 비극이 장애인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현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주의 공방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정부는 그 많은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면서도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그럼에도 야당은 그나마 지금의 복지예산도 줄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장애인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장애인 복지의 가장 큰 저해 요인은 무엇보다 반세기를 지배해온 국가 정책 기조인 경제성장론이다. 독재 시대로부터 민주화 시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경제성장론에 대한 맹신은 달라진 게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좌우하고 있는 게 아니라 기획예산처의 몇 안되는 정책결정자들이 좌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획예산처 인맥은 경제 성장론자들로 이루어져 왔고 이들이 보기에 장애인 예산은 여전히 쓸모없는 비용일 뿐이다.

보건복지부가 아무리 예산을 확충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어도 기획예산처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무참히 잘리기 마련이다. 2002년 장애인복지 예산과 관련 보건복지부의 복지 예산안과 기획 예산처의 심의 조정안을 비교해 보면 장애인 복지 예산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첫째 수당의 문제이다. 올 장애인 수당은 월 4만5천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돼 11만 명의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예산 666억 중 32.8% 삭감한 447억8천만원이 장애인 수당 예산으로 책정되었다. 국가유공자의 기본연금이 월 53만5천 원에서 60만 원으로 6만7천 원 인상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5만 원이란 액수는 하루 1,666원에 불과한 액수로 수당의 목적이나 액수 산정의 근거가 애매모호하다. 장애수당은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을 보전해 주는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지급해야 하는 보편성을 띄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 수당은 액수 산정에 근거가 없고 장애가 있는 누구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보호 대상자 중 1급, 2급, 3급 중복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수당 본래의 목적과 부합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장애아동부양수당과 장애인 보호수당의 문제이다.
9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신설된 장애아동부양수당과 장애인보호수당이 3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 수당들은 장애인복지법 45조에 따른 의무사항으로 장애아동을 부양하고 있거나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자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가 3년째 예산을 책정하고 있지만 기획예산처가 계속 제동을 걸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01년 중점 예산확보 계획에 따르면 장애아동부양수당 및 장애인보호수당은 장애인복지법 제45조에 의거 장애로 인한 추가적 비용보전을 위해 장애아동 보호자에게 그 양육비용으로 장애아동부양수당을 지원하고 상시적으로 보호수발인이 필요한 1∼2급 중중장애인의 보호자에게 보호수당을 지원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획예산처와의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폐기처분 되었다. 지난해에도 기획예산처는 마찬가지 이유로 전액 삭감한 바있다. (추후 장애인계의 문제 제기로 장애아동부양 수당은 시행)

세번째로 장애인편의시설 촉진기금 정부출연금 문제이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기금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이 규정한 의무사항으로서 기금에 대한 정부의 출연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정부 출연금 예산 30억 원 역시 전액 삭감되었다. 법으로 보장된 내용마저도 묵살하는 기획예산처의 태도는 법을 넘어서 예산집행 권한을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올해 장애인복지 예산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장애인복지 발전 5개년 계획과 관련된 예산이다. 98년부터 2002년까지 5개년 동안 시행되었어야 할 이 계획은 아직까지 예산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내년 예산안으로 제시한 금액은 불과 2억 원, 그나마 기획예산처는 아예 삭감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은 첫해인 98년부터 삐걱거렸다. 당시 재정경제원이 IMF로 인해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예산과 사업별 추진일정을 전면 보류시킨 것이었다. 이 계획을 추진한 주무 부처인 복지부조차도 5개년 계획에 대한 세부계획이나 일정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처럼 2002년도 장애인복지 예산 심의조정 과정에서 보인 기획예산처의 냉철한 경제 논리에서는 인간에 대한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기획예산처는 장애우 복지의 중점사항 등에 대한 분석도 없이 장애우계의 의사를 묵살한 채 작위적인 판단으로 예산을 결정하고 있으며 주요 사안에 대한 고민도 없고 논리도 없이 탁상에서 펜대를 휘두르며 숫자 놀음을 하고 있다. 대선 이후 어느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지만 장애인 복지를 더 이상 정치 선전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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