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의 현실 - 차별과 착취가 애국으로 통하는 사회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 - 차별과 착취가 애국으로 통하는 사회
  • 양혜우 / 한국인이주노동자 인권센터 소장
  • 승인 200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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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
얼마 전 일하다가 크게 다쳐 이곳(한국이주노동자 인권센터)을 방문한 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름을 물으니 “제 성은 ‘야’이구요 이름은 ‘임마’예요”라는 답변이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공장 사람들에게 아무리 자신의 이름이 ‘알리’라는 걸 말해줘도 그를 부를 땐 늘 ‘야 임마’라고 부른다며 한국에선 자신의 이름도 존재 가치도 없고 그저 기계의 한 부속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한국 땅에서 살면서 받는 모욕과 차별은 알리씨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노동하고 있는 약 30만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모두 공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또한 이들이 겪는 차별과 착취는 공장 작업장을 넘어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늘 겪는 문제이며, 이는 사회 주류가 소수자에 대한 일반적인 차별을 넘어선 착취와 인권유린의 온상이며 그 양태도 각양각색이다. 다시 알리씨의 공장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는 한국에 올 때 800만원의 브로커비를 내고 산업기술연수생으로 입국했지요. 그런데 월급은 한달 42만원인거예요. 계산해보니 거의 2년 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한국에 올 때 진 빚을 갚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죽자 살자 일을 했지요. 하루 열 네 시간씩 열 여섯 시간씩. 나중엔 너무 힘들어서 일요일엔 쉬겠다고 하니 공장이 바빠서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일요일에 쉬는데 왜 외국인만 일해야 하냐고 항의했더니 그렇게 힘들면 방글라데시로 돌려보낸대요.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을 생각해서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지요, 그 날도 일요이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쉬겠다며 기숙사에 누워있으니, 작업반장이 문을 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계가 쉬고 있으니 빨리 나와서 일하라는 거예요. 정말 너무 피곤했는데 하는 수 없이 공장으로 갔고, 기계 앞에서 깜빡 졸았는데 글쎄... 그리고 정신을 잃었지요. 깨어나 보니 병원이고, 팔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이렇게 어깨까지 절단되고 말았고 내 인생도 끝났지요.”

알리씨의 경우처럼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강제 노동, 저임금의 문제는 결코 일부 이주 노동자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주간 근무는 한국인이 야간근무는 외국인이, 또한 외국인만 빼놓고 한국인들만 가는 회식, 반말과 욕설,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성추행 등은 모든 이주 노동자들이 작업장내에서 겪는 일상의 고통들인 것이다.

또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관습, 종교의 다름에서 오는 일상의 차별과 편견에서 역시 심각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권 노동자들의 경우 일상생활에 도전을 받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라마단 기간’이다. 이슬람권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적 예식에 따라 라마단 기간 중 낮 동안에는 금식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종교적 신념과 의식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업주는 “종교도 좋지만 어떻게 밥을 먹지 않고 힘을 쓰고, 일을 제대로 하겠느냐”며 억지로 밥 먹을 것을 강요하고, 이슬람권 외국인들은 “먹는 것보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더 중요하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상담소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종교적으로 금기시 되어있는 돼지고기는 늘 공장 식당에서의 논란거리다. 이러한 문화적 관습의 차이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외국인이라고 해서 방을 줄 수 없다고 하는 집주인들이나 버스 안에서 모든 좌석이 꽉 찼어도 외국인 노동자가 앉은 옆자리는 비어있는 한, 이 사회가 집단적으로 벌이고 있고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적 차별과 착취를 조장하고 정당화시키는 주범은 바로 정부이다. 노동부는 그동안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겪어온 심각한 인권유린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고용허가제라는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법무부 출입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한 통제가 필요한 법을 요구하고 있고, 통상산업부와 중소기업 협동조합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아주 싼 값에 단기간 동안만 쉽게 쓸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현행의 이 제도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통상산업부의 논리는 값싼 외국 노동력은 생산비 절감에 도움을 주어 해외 시장의 가격경쟁을 이겨낼 수 있고 이것이 곧 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즉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곧 애국이라는 논리이다.

노동부의 고용허가제 법안은 경제 논리에 밀려 입법 상정도 되지 못한 채 7년 동안 표류하고 있고, 통상 산업부의 외국인 노동자 활용론은 국가 경쟁력 강화의 논리에 힘입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 착취와 인권유린은 방조되고 묵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땅을 사는 우리 역시 이러한 사회적 국가적 차별과 착취를 동조하고 있는 공범은 아닌지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