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이렇게 보냈다 Ⅱ 연변 봉사활동 참가기
이들은 이렇게 보냈다 Ⅱ 연변 봉사활동 참가기
  • 양현진 / 화학 2
  • 승인 2002.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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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 봉사활동 참가기
베풀러 간 곳에서 가르침과 깨달음을 한껏 품어오다

2001년 7월 24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포항이 연일 전국 최고 기온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기운을 다 빼놓고 있었을 때, 나는 중국의 흑룡강성 오상시에 있는 오상시 민락 중심 소학교에 있었다.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동안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놀고 하던 조선족 꼬마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 말이다. 연변 봉사활동에 대한 내 기억은 그렇게 시작된다.

지난 해 4월쯤, ‘연변 봉사 활동’이라는 것이 있다는 공지를 포스비에서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주최되는 조선족 대상의 교육봉사 활동. 그것도 한동대와 이화여대 사람들이 같이 가는 것이라 했다. 대학 생활의 첫 방학을 뭔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던 내 야심찬 꿈과 맞물려, 연변 봉사활동은 내 첫 방학의 계획으로 ‘찜’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계획은 연변 봉사에 가기로 한 사람들과 모임을 가지고, 하나 하나 준비가 되면서 구체화되었고, 드디어 출발했을 때는 2001년 7월 9일이었다.

처음 연변 과기대에 도착해서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사회 봉사단 사람들과 만나고, 두레마을이라는 곳으로 오리엔테이션을 갔을 때 봉사활동에 온 모든 사람-한동대, 이대, 우리학교와 사랑의 교회 사람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성비가 우리 학교랑 거의 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우리 팀은 여학생만 9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흑룡강성 오상 민락 소학교에 가게 된 우리 팀은 ‘오상 민락’팀이 되었고, 여러 가지 게임들과 모의수업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연변과기대에서 봉사활동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있었던 오상민락소학교는 연변에서 9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의자 등받이가 90도인 기차를 타고 도둑이 무서워 제대로 자지도 못하면서 도착한 봉사지에는 조선족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불타오르는 교장선생님과, 약간은 의욕이 없어보이지만 선하게 생기신 선생님들과, 우리 나라 애들보다 꾀죄죄하고 조그맣긴 하지만 또랑또랑한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잘 씻지 않아 머리에 기름이 흐르고 손목에 땟국물이 흘러도 “선생요~”를 외치며 눈을 빛내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해 보여서, 너무나 자신이 넘치게 살아왔던 스스로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여기 한국과는 비슷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꼬마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던지 화장실이 푸세식(?)이어서 밤에는 무서워 가지도 못하고, 우리가 보기엔 흙탕물인 도랑물에 씻으라는 말에 질겁을 하면서도, 우리 팀 모두는 다들 중국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봉사가 끝나고 연변과기대로 돌아와서 간단하게 백두산에 다녀오고 나니, 3주는 참으로 한 순간이었다. 방학의 약 반을, 느낌상으로는 방학의 약 3/4를 연변봉사활동에 보내고 나니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렇지만, 이 지면에 있는 이야기들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 사람들과의 만남과 여러 가지 생각들은 그 시간만큼의 가치를 넘어섰던 것 같다. 나머지 방학 내내 나는 중국에서의 생각들과 느낌들을 정리하느라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내가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한 것, 즉 내가 무언가 준 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많이 배우고 온 느낌. 그런 느낌들이 나를 조금씩 조금씩 커 가게 만들었다는 것. 이런 느낌들, 우리 나라가 아닌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과, 봉사활동에서 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같이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번 해에도 진행될 연변 봉사활동에 꼭 참여해 보시기를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