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는 포항에 있어 무엇인가
포항공대는 포항에 있어 무엇인가
  • 임재현 / 포항지역사회연구소
  • 승인 200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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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석에서 포항지역과 포항공대와의 협력관계에 관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누군가가 ‘둘은 잘 협력하고 있다. 포항의 학부모들은 포항공대 덕에 우수한 과외 선생을 구하고, 공대생들은 그래서 용돈을 얻는다’라는 요지의 말을 해서 한바탕 웃음이 인 일이 기억난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농담이긴 하지만 그래도 포항과 포항공대의 인연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대학의 신입생 유치력과 그로 인한 생존력 경쟁만이 유일한 화두인 양 거론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도대체 대학과 지역의 협력관계가 왜 끊임없는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대학의 역할은 ‘지식의 전달, 지식의 창조, 지식의 활용’이라 규정되며, 대학의 기능은 ‘교수기능, 연구기능, 사회봉사기능’으로 요약되어 왔다. 그런데 각각 3번째 ‘지식의 활용과 사회봉사기능’과 같은 적극적인 역할들이 현대 사회에 와서 중요하다는 얘기들이 대학의 역할 논의에서 단골처럼 등장해왔다. 그러나 왜 지역과 대학이 서로 조화해야하는 지를 설명하자면 ‘둘은 서로 하나의 사회 울타리 속에 놓인 구성원이기에 서로를 잘 알고 평소에 협력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서로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평범한 이웃의 친목관계를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포항지역민은 포항공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포항지역사회연구소가 지난 90년 5월에 개최한 <4년제 대학 설립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를 위해 실시한 ‘포항지역민 여론조사’ 결과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당시 포항지역은 포항공대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만족, 특히 시설과 교수진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 지역사회와의 교류 부문에서는 ‘대단한 불만’을 갖고 있음이 나타났다. 왜냐하면 포항공대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포항지역에 4년제 대학 설립을 위한 지역민의 기대는 수십년에 걸친 것이어서 포항공대가 설립됨으로써 지역민의 지역대학 설립염원은 달성되는 것으로 보았으나 포항공대의 설립과 그 운영을 지켜본 지역민 대부분은 이 지역 출신 자녀 중에서 성적우수자 극소수만이 입학이 가능하고, 이공계열의 학과만이 설치된 연구중심대학이다 보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점에 대해서는 초대 학장이던 고 김호길 박사가 <4년제 대학 설립을 위한 시민대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하여 사과하신 적이 있다.

10여년이 흐른 오늘에 와서 지역과 포항공대의 관계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포항지역민은 포항공대에 대하여 이전보다 더한 애정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포항공대의 모체인 포항제철과 지역이 90년 당시의 긴장관계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어느 정도 신뢰관계를 구축하였으며, 포항시민이 포항공대의 국내외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포항공대는 이미 한 지역을 넘어 세계의 대학으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포항공대와 그 구성원이 포항에서 해야 할, 그리고 남은 일은 무엇인가? 우선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포항공대의 모체가 된 포항제철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착취의 댓가에 의해 만들어진 기업이며, 결국 포항공대는 멀리는 민족, 가까이는 근로자의 피와 땀이 모여 만들어진 대학임을 알아야 한다. 시작과 성장의 역사를 모른 채 제 국가의 위력만 믿어온 국민의 비극은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서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그 다음으로는 교수들의 역할이다. 포항지역은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식인층이 약한 곳이다. 따라서 지역협력과 관련하여 보자면 포항지역의 여러 시민?사회 단체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학생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평소 지역사회와 연대를 이루기 위해 지역민에게 열린 생활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학생을 포함한 포항공대 구성원들의 과학자적 소양에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포항공대는 이미 전 세계에 포항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포항공대의 구성원들이 건전한 과학자로서, 윤리의식을 저마다 견지하고 인간과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여 양심적인 연구결과를 전 세계에 내놓는다면 이는 결국 포항지역 전체의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다.

포항지역민은 4년제 대학 설립을 위한 청원운동을 수십년에 걸쳐 계속해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지역의 대학이 지역 발전을 위한 한 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아울러 지역 출신의 인재들이 굳이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가지 않고도 학업을 계속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소망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포항공대 설립 이후에 만들어진 지역의 어느 4년제 종합대학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은 이 지역민이 포항공대에 여전한 기대를 걸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다.

크고 작은 좌절이 있었지만 포항공대가 지역민의 기대와 애정을 바탕으로 모범적인 대학이 될 것이라 포항은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