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여야 할 기자는 없다
기레기여야 할 기자는 없다
  • 김건창 기자
  • 승인 2018.01.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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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학보사 기자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기레기’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 말을 들으면 언뜻 기분이 썩 좋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기자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듯해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기자라는 직업에 악독한 수식을 부여하며 심지어는 기자를 악으로 규정해버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기자를 권력자들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이리저리 빌붙어 여론을 주도하는 권력자의 앞잡이, 혹은 하수인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에 한 기자가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구타당하자 많은 이들이 기자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폭력을 정당화시키면서까지 기자를 악으로 내몬 것이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분명 군사정권의 대학생 고문치사를 밝혀내 민주 항쟁을 만들어 낸 것도 기자였고, 정치, 경제계 인사의 비리가 밝혀지는 것도 기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비단 과거만의 일이 아닌, 지금도 매일 저녁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아예 기억 속에서 지워내기라도 한 듯, 아니면 마치 일부러 외면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기자들에 ‘기레기’라 비아냥거리며, 매체는 이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물론 진짜 ‘기레기’들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그간의 많은 악의적인 오보들은 그들의 책임이며, 그들은 기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기자들이 몇몇 기자라 할 수 없는 자들에 의해 매도되고, ‘기레기’ 취급을 받는 것은 무척 불합리하며, 그들의 목을 옥죄는 일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생각했던 기자는 어둠을 내몰아 주는 등불과도 같은 것이었고, 기자라는 단어는 ‘불의’가 아닌 ‘정의’에 더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기자를 꿈꿔왔고 지금도 그 꿈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마주하게 된 후 접한 것은 기자들에 대한 냉담한 반응, 그리고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기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넘치는 혈기를 갖고 기자가 된 수많은 이들은 연중무휴의 어려운 근로 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그에 맞는 적절한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뿐인가, 자신이 옳다 믿는 것을 기사로 써도 광고를 주는 기업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윗선에서 걸러지기도 한다.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이 아니고서야 버티기도 힘들고, 그래서 중간에 기자라는 직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세상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기자로 남아 있는 이들은 아직 많다. 그들이 있기에 대통령의 비리를 자신 있게 보도하고, 이전 정권에 의해 탄압받아 기자 자리에서 쫓겨났던 이들이 긴 투쟁 끝에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기레기’에 머무른다면 더는 우리 사회에 정의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공영방송에서 이전 정권 시기에 임명됐던 경영진이 물러나고 있다. 경영진에 의해 편향된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공영방송이 앞으로는 더욱 공정한 보도를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희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비꼼보다는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