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94건)

나는 굉장히 산만한 사람이다. 무엇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 덕에 한 시간이면 족히 끝낼 과제도 남들보다 몇 시간씩이나 더 걸릴 때가 많고,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주제를 수시로 바꾼다. 학부 9학기나 되어서 6번째 동아리에 가입했다. 가벼워 보인다며, 진득한 멋이 없다며 주위로부터 꾸짖음을 자주 들었고 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자격지심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의미는 학부에서 쌓은 전공 지식이 아닌 나의 산만함에 대한 이해였음을 이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고백한다.1학기와 달리 2학기엔 학교의 문화가 하나로 통일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쉽게도 나의 효자동 생활에서는 여유가 보이질 않았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한 해간 RA로 활동하며 진행한 사생 면담에서 가장 많이 들어온 고민은 학업 스트레스와 놓쳐버린 주체성이었고, 이따금 갖는 술자리에서도 ‘하루를 보내는 기계가 된 것 같다’는 자기소견은 단골 소재였다. 습관적 바쁨이 곳곳에 있는 캠퍼스에서 자신을 잃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낮에는 수업, 저녁엔 과제, 새벽엔 야식과 술로 자신을 내려놓고 조용히 획일화되어간다.이때

지곡골목소리 | 오동현 / 기계 13 | 2017-03-15 02:07

3월은 포스테키안의 음주가 가장 잦은 달이다. 이 시기에는 개강 총회 등 공식 행사를 비롯해 술자리가 많다. 재학생들은 흔히 말하는 단어로 ‘공대스럽게’ 과음하는 문화를 신입생들에게 보여주고, 신입생들도 이를 따라 하게 된다. 과음으로 인사불성이 된 학생들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킬 뿐 아니라, 아침 수업 결석으로 과목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우리대학 과음 문화의 원인은 무엇이며, 부정적인 면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음주로 인한 문제들은 학생들이 음주 예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음주 상황에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주로 발생한다. 가정이 음주 예절을 가르치는 점차 기능을 잃으면서 신입생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대학에 오게 되지만, 대학 역시 단지 메일이나 공지사항으로만 해당 내용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신입생들은, 성인이 되면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에 머무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음주 예절을 제대로 모르던 일부 학생들이 변질된 구식 군사 문화에서 비롯된 0예절을 전통 예절로 착각해 답습하고 있다. 술을 권하면 반드시 마셔야 하고, 모두가 같은 양을 마셔야 한다는 것, 술은 많이 마실수록

지곡골목소리 | 박신우 / 수학 13 | 2017-03-01 19:47

23호지만 하얗게 나와서 거부감 없이 많이들 쓰세요, 하고 점원은 손등에 파운데이션을 발라 줬다. 하얀 23호라니. 듣고 어이가 없었다. 하얀 까만색이 나왔어요, 하얀색이랑 별로 차이도 안 나요. 그러려면 하얀색을 사지. 이 무슨 역설인지.대한민국에 23호가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여성들이 갈수록 하얘지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 평균이 21호라지만,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에 진정한 21호는 몇 없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 23호를 고르려다 망설일 것이다. 에이, 난 그 정도까진 아니지. 나보다 까만 사람도 있는데 뭐. 아마 당신은 타협할 것이다, ‘하얀 23호’로. 은연중에 당신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세우고 거기에서 스스로가 그렇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합리화한다. 나는 그렇게 뚱뚱하지 않아, 나는 그렇게 까맣지 않아. 봐봐, 난 55지만 작은 55를 입잖아!마이크 제프리 아베크롬비 CEO는 “아베크롬비는 ‘매력적인 미국 젊은이’를 지향한다. 우리 제품에 맞지 않는다면, 그들은 매력적인 미국 젊은이가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며, XL이상의 여성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면 물을 흐리므로 그들에게 맞는 사이즈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말해 질타를 받았

지곡골목소리 | 박정민 / 생명 14 | 2017-02-10 20:13

음악은 현재 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생활 속에 녹아 들어있다. 팝, 재즈, 클래식, 인디 등등 음악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 음악들은 사람들의 귀를 만족하게 해주거나 정서적으로 안정시켜 주기도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상생활에서 듣는 규칙 없는 음들이 정렬된 것인데 음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사람들은 누구나 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미국의 여성 팝가수인 Sara Bareilles의 노래들에 푹 빠졌었고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주저 없이 옛 앨범들을 듣는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유학생활 중 그녀의 노래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고 멜로디만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상태로 몇 년이 지나갔다. 한국에서 다시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된 나는 주저 없이 그녀의 노래들을 검색했고, 팬이 되었다. 수년 동안 그녀의 앨범들을 들으면서 수십, 수백 번 재생한 곡들이 수두룩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곡이 더 좋아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처럼 어떤 특정한 계기를 통해서라든지 오랜 기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라든지 특정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지각

지곡골목소리 | 황다원 / 신소재 15 | 2017-01-01 17:17

얼마 전, 우리대학 총학생회는 이례적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총학생회에서 쓴 시국선언문을 읽으면서 논리 정연하게 잘 쓴 글이라 생각했지만, “과학도라는 변명으로 시국을 외면하기보다”라는 구절이 우리 학우들이 여태껏 ‘과학도’라는 이름 뒤에 숨어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도외시해왔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과학도라는 사실이 시국을 외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현대 사회에서 과학도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그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은 ‘과학도’가 만든 것이고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빅데이터 역시 과학도가 만든 작품이다. 과거에는 연구실에서 밤새 연구하여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과학자의 최고 덕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연구 성과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행동하는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핵무기를 반대하며 ‘행동하는 과학자’로 칭송받는 이유도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책임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21세기에 ‘과학도’들은 사회 변화의 최전방에 서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학도’들은 본인들이 만들어 나가야 할 세상에 책임을 져야 하고 ‘시국’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나

지곡골목소리 | 김현우 / 물리 15 | 2016-12-07 11:22

정치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가, 아니면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인을 혐오하는가.필자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 번째,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드 배치 문제는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인가? 두 번째, 이공계 사회를 뜨겁게 달군 대체복무 폐지문제는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인가? 우리 학교에서 두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같을까?최근 문미옥 의원이 우리대학에 방문해 강연을 했다. 강연 도중, 문 의원은 국회에서 논쟁하고, 심지어는 몸싸움이 벌어지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국회의원들이 격렬하게 ‘싸우는’ 것은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의 요구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것’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기부활동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싫다는 일부 독자에게 질문하겠다. 이전까지 우리는 단순히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것’이 싫었던 것인가.철도노조 파업이 지속되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평시 대비 운행률은 83%에 불과하다. 노조의 파업에 대해 우리는 ‘귀족 노조’라는 의견과 ‘정당한 의사 표현

지곡골목소리 | 한승철 / 화학 15 | 2016-11-09 20:08

집단 양극화라는 말이 있다.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논의한 결과,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그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한층 극단화된 결론을 도출하는 경향을 이르는 말이다. 특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논의한 후에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공감이다. 집단 구성원의 견해가 서로에게 확증 받게 됨으로써 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SNS는 이러한 집단 양극화가 일어나기 아주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가장 대중적인 SNS라고 할 수 있는 Facebook의 언론사 페이지를 예로 들어보자. 지면신문이나 인터넷신문과는 다르게 페이스북 뉴스 기사를 볼 때는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의견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문제는 이 의견 교류가 같은 페이지를 구독하는 팔로워들끼리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페이지와 진보언론인 한겨레신문 페이지에 아예 똑같은 기사가 실렸다고 하더라도 지지를 얻는 댓글의 종류가 확연히 다를 것이다.심지어 SNS를 통해 정보를 접할 경우, 부지불식중에 정보가 한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크다. Facebook 타임라인에 뜨는 게시물들은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지곡골목소리 | 이호형 / 신소재 14 | 2016-10-12 17:22

사람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내면적 성숙에 주력하는 내적 자아, 그리고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외적 자아다. 예를 들어,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를 꼼꼼히 보고, 온종일 영화의 장면들을 곱씹으며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내적 자아가 작용한 결과다. 반면, 왓챠에 영화 감상평을 게시하면서 나를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외적 자아가 작용한 결과다.나는 내적 자아의 성숙을 더 중요시하지만, 외적 자아의 성숙에도 소홀하지 않다. 이는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가 서로의 성숙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감상평을 올리는 데 재미를 느껴,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주인공들의 삶과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다. 이처럼 두 개의 자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면 자아는 더욱 빠르게 성숙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적 자아의 중요성을 종종 잊어버린다. 외적 자아의 성숙은 ‘사회적 인정’이라는 결과로 쉽게 드러나지만, 내적 자아의 결과는 오직 나만 알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외적 자아만 중요시한다면 내적 자아의 미숙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영화를 많이 보

지곡골목소리 | 채수윤 / 화공 14 | 2016-09-28 22:51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기타를 접했고, 지금까지 계속 기타를 치고 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는 빠르고 정확하게 기타를 연주하면 무조건 훌륭한 연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항상 그런 연주가 최고는 아니었음을 알았고, 이에 대해 내 생각을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나는 기타 연주 중에서도 블루스를 정말 좋아해서 틈이 날 때마다 블루스 기타 연주를 들었다. 계속해서 연주를 듣다 보니 기타의 톤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됐고, 즉흥 연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기타리스트들은 어떤 지식을 기반으로 연주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기타에 흥미를 갖고 알아갈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됐고, 다양한 연주를 찾아 들을수록 연주자마다 지닌 스타일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빠르고 화려한 연주보다 창의적이고 표현력이 짙은 연주를 찾게 됐고, 흔한 멜로디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보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표현력이 좋은 기타 연주를 더욱 선호하게 됐다. 한 번은 John mayer라는 기타리스트가 버클리 음대생들 앞에서 연주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특정한 멜로디 라인에 학생들이 환호하였다. 2년 전 처음으로 그 영상을 보았을 때는 학생들의 환호를 이해할

지곡골목소리 | 박준호 / 기계 14 | 2016-09-07 17:53

내가 페미니즘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중, 여고라는 성별 제한적인 환경에서 자란 나는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야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와 그로 인한 차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접했고 이와 동시에 사회에 깔려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시선까지 알게 되었다. 내가 페미니즘 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빌리고 있었는데 함께 도서관에 왔던 친구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만 보고 한껏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나는 내가 잘못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인지 움츠러들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나는 부정적 인식이 두려워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말하지 못했다.페미니즘을 향한 부정적 인식은 이 학문에 대한 숱한 오해들로부터 온다. 여성만을 위한 학문, 남성의 권리를 고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침해하기까지 하는 학문. 페미니즘의 목적은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역할을 바로잡는 데에 있다. 과거로부터 행해진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제도적 불평등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남자는, 여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과 개인의 속성을

지곡골목소리 | 지은경 / 화학 12 | 2016-06-01 11:33

페미니즘은 최근에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대학은 남자가 워낙 많은 대학이라 이런 문제에 좀 무딘 편이지만, 어느 단체나 조직을 가도 남녀 간 갈등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사실 어감이 좋지는 않다. 당장 나만 해도 페미니즘이 어쩌고~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또 이 얘기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 정도다. 자주 볼 수 있으나 가벼운 느낌으로 쓰면 되는 단어가 아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은 남자로서 드는 반감이 있다. 페미니즘은 남녀 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사실 주요 대상이 남성인 것은 아니다. 성차별의 대상은 높은 확률로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페미니즘으로 인해 내가 혜택을 볼 일은 별로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말 여성이 그토록 차별받고 있는지 체감이 잘 안 된다. 학부 생활에서 특별히 이윤이 걸린 직책이 있어서 남녀가 대립하는 경우는 잘 없기도 하고, 내 근처에서 성희롱 같은 일을 본 적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남자라는 이유로 자각하지 못한 채 받고 있는 혜택이 있다면 이

지곡골목소리 | . | 2016-05-04 17:15

“너는 왜 공부를 하니?”선생님은 교실 구석에서 문제지와 씨름하던 뿔테 안경의 내게 물었다. “생명과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요!”반은 맞고, 반은 거짓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믿고는 싶었다. 우리 집은 평범했다. 내게 공부는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한 도구였고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즐겁지 않았다. 내 안에 나는 없었다. 나는 빈 껍데기였다. 좋은 대학을 가기에 생명과학은 꽤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았고 나는 생명과학을 좋아한다고 믿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에 왔을 때,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스무 살이 되었지만, 난 누구고 왜 여기 왔는지, 뭘 하고 싶은지 자신을 스스로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스낵바 돈가스의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불평이나 하던 나는, 여전히 소년일 뿐이었다.대학생활은 안갯속의 마라톤이었다. 짜인 대로, 죽을힘으로 달렸지만, 길의 끝은 알 수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 포항시 축제에서 치어로 공연 퍼레이드를 하는 날이었다. 비가 내린 행사장에서 달고나를 팔던 중년의 행상인은 피곤한 듯 담배를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쑥스러움을 참고 먼저

지곡골목소리 | 강한솔 / 생명 15 | 2016-04-06 17:19

어느덧 대학생활을 한 지도 3년이 넘었다. 학교에 다닌 날들이 학교에 다닐 날들보다 더 많이 남은 이 시점에서 지난 3년간의 학교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좋고 나쁜 일들을 수없이 겪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렇게 느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가 학교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려고 시도한 것이다.나는 우리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대학교’라는 곳에서는 학업도 중요하지만, 학창 시절에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고등학생 때 학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해 보지 못 했던 것들을 대학생 때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초점이 되었던 두 가지는 인간관계를 쌓는 것과 리더십을 기르는 것이었다.우리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각종 단체에서의 행사, 술자리 등을 통해 느꼈던 점은 우리 학교가 규모는 작지만,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더 돈독하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좋은 선배, 동기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점은 우리 학교만의 매

지곡골목소리 | 주정빈 / 산경 13 | 2016-03-24 12:07

나는 올해 헌내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겪었다. 술도 많이 마셔봤고 공부도 나름으로 열심히 하였으며 동아리, 분반, 학과 등 많은 사람과 친해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익숙하게 대학생활을 해내고 있지만,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이 생활은 나에게 너무나도 낯설었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 글은 그때의 심정을 담아 올해 새로이 입학한 새내기들을 위해 쓰일 1학기 생활 전반에 대한 공략본이다.1학기가 시작되면 일단 침착해야 한다. 분반 개총, 과 개총, 동아리 개총 등 많은 모임들이 정신없이 널려있다. 하지만 웬만해선 선배님들이 다 친절히 대해주시고 또 잘 지도해주시니 그냥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 문제는 뒤풀이다. 술잔을 받자니 어디까지 받아야 할지 애매하고 또 거절하자니 눈총 받을까 겁난다. 그럴 땐 너무 나서지 말고 선배님의 말씀에 맞장구를 잘 쳐주며 “호호호 깔깔깔”만 잘 해주면 된다. 선배들도 알고 보면 외롭다. 특히 고학번일수록 그렇다. 말동무가 필요하다. 독거노인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모임들을 무난히 해결하고 나면 앞으로의 관

지곡골목소리 | 김근우 / 전자 15 | 2016-03-09 20:01

여사 문을 열고 바깥으로 한 발짝 내디디려 하면 세찬 바람이 잔뜩 움츠린 몸 사이를 파고드는 겨울이다. 자꾸만 기숙사 방 한쪽을 차지한 침대 이불 속으로만 기어들어가게 된다. 겨울이라서 그러한지 자는 시간도 늘어난 것 같다. 아니면 방학이라 게을러진 탓인가.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이번 주말이면 울산에 사는 친구가 포항으로 놀러 오기로 했다. 강제적으로 오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저번 주말, 울산에서 그 친구와 놀러 다녔다.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친구의 보조 배터리를 빌렸으나 그게 발단이었다. 주머니에 그냥 넣은 채로 포항에 돌아와 버린 것이다. 물건을 받는 겸 포항 구경 하러 오기로 했다.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만난 지 이제 거의 3년이 되어 간다. 신기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같이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다. 같이 있고 싶고,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다. 그냥 무지 호감이다. 신뢰감 만땅. 부럽기도 하고, 왜일까 궁금해서 친구를 관찰하였었다. 관찰한 바로는, 비법은 바로 진부하지만 경청이었다. 이야기할 때 눈 마주치면서 잘 들어주고, 무슨 이야기

지곡골목소리 | 강민지 / 화학 15 | 2016-02-19 18:20

우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 새해에는 좋은 일 가득한 한 해를 보내시길 바란다는 말을 남깁니다. 이 글을 통해 새해를 보내고자 하는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새해에는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한 해를 보내자는 것입니다.우리 포스텍 구성원 여러분 모두의 소망 중 하나는 포스텍이 대한민국의 과학을 선도할 과학자를 키워내는 것입니다. 특히, 훌륭한 과학자로서 성장하고 싶은 것은 많은 학생의 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꿈을 이루어내기 위해 포스텍 구성원들은 밤낮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이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찬물을 끼얹는 말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중 하나는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며 달린다는 것은, 자신도 꿈을 향해 달려가려고 노력하는 한편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두자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관심이라는 것은 지켜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함께 달려갈 수 있도록 손을 뻗으며 옆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이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 함께 달리고 있는 친구들을 서로 앞으로 끌어주면서 살 수

지곡골목소리 | 최동준 / 수학 13 | 2016-01-01 23:31

얼마 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금요일이 일요일보다 좋다. 왜냐고? 오늘만 끝나면 주말에 쉬니깐! 행복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있는 것이다. 현재의 시간을 아껴 미래에 투자하자.” 나는 이 말에 찬성한다. 지난 3년간을 돌이켜보면, 놀기도 많이 놀았고 학점도 잘 챙기지 못했다. 나름 그때는 인생을 즐긴다고, 대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합리화하며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현재의 쾌락을 추구했다. MT 날 Assignment를 가져오는 친구를 속으로 놀려댔다.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나는 저렇게 안 한다”, “내가 더 잘난 인생이다” 생각했다. 덕분에 나의 학점은 계속해서 평균 이하였고, 많은 학기가 지난 지금, 내가 원하는 많은 것들에 제한을 받고 있다. 지곡장학금은 물론이고 외부 장학금, RA, SMP, 단기유학, 멘토링 등은 지원자격조차 되지 않는다. 쉬어가자고 합리화하며 바닥에 잠시 내려둔 나의 학점이 뿌리 깊이 박혀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반대한다. 만약 누군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 동아리, 자치단체, 친구 관계 및 학생활동 경력을 4.3의 성적과 바꾸자고 한다면 거침없이 NO

지곡골목소리 | 김금태 / 전자13 | 2015-12-02 19:32

어느덧 포스텍에 들어온 지도 2년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름 그동안 포스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보았고, 학과 도서관과 대학본부도 가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학교에 온 것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대답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그들도 특별한 답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랑스러운 포스텍, 실망스러운 포스텍에 대해 몇 줄 적어보고자 합니다.이 학교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입학사정관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생물 수업 시간이었고, 휴대전화에 찍혀있는 054로 시작하는 번호를 본 저는 후다닥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습니다. 합격의 기쁨에 뭘 준비해가야 할까요, 제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요 등등 별의별 것을 물어보며 횡설수설하던 한 갓 난 학생에게 입학사정관 선생님은 조목조목 친절하게 대답해주셨고, 자신감을 북돋워 주셨습니다. 물론 이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입학사정관실 페이지를 통해 친밀하게 소통하는 모습도 폐쇄적인 서울 모 대학에 비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소 소통이 무엇인지 실천하는 입학사정관분들의 땀이 만들어 낸 포스테키안, 포스텍 자랑스러움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1학

지곡골목소리 | 조영찬 / 수학 14 | 2015-11-04 21:20

조선 시대에는 민심을 알기 위해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민요를 조사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시행하는 정책들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은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민요에 담긴 의미를 읽고 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학의 ‘민요’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조선 시대처럼 힘들여 조사할 필요도 없다. 학생들과 직접 부대끼며 지내지 않더라도, 학내 게시판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통해 동향을 알 수 있다. 셧다운제(심야시간 인터넷 게임 이용 제한 정책), 학생식당 민영화(지곡회관 식당 위탁운영 추진 계획). 지난 학기부터 학내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우리 대학 정책들이다. 괄호 앞에 적은 단어는 학생들이 자유게시판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을 낼 때 사용했던 단어들이고, 괄호 안의 단어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정책명이다. 처음 셧다운제를 시행하기 전에 대학은 셧다운제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심야시간 인터넷 게임 이용 제한 정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주기를 당부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학이 시행하는 긴 이름의 정책이 셧다운제와 본질에서 같다고 생각하며, 셧다운제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했다. 학생식당 민영화 또한 대학은 식당 운영 적자, 시설 노후화

지곡골목소리 | 신용원 / 컴공 13 | 2015-10-07 20:25

IBS-CGP는 포스텍 안에 있는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소입니다. 최근 이곳에서는 국내 다양한 대학의 학부생들과 교수님들이 참가한 1주일간의 캠프가 있었습니다. 저도 운이 좋게 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다른 대학의 학부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포스텍 학생들과 1주간 함께 생활하면서 이화여대 친구가 느낀 점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어떤 포스텍 친구가 말해준 포스텍의 장점은 ‘공부하기 좋다는 것’, 단점은 ‘너무 공부하기에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이대 학생들은 재학기간 동안 면담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마저도 메일로 교수님과 미리 약속을 잡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중요한 고민을 혼자하고, 해답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포스텍의 교수님들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교수님의 태도는 학생들에 대한 강한 기대와 관심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수업의 진도가 매우 빠른 편이었는데, 또 학생들이 그만큼 교수님들의 관심에 따라와 주는 것 같아서 보기에 매우 좋았습니다.또 다른 장점은 학생들 사이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점입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시험기간에 선배가 후

지곡골목소리 | 전상학 / 수학 13 | 2015-09-23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