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은 창의성의 시대다. 우리대학에도 ‘창의성’을 앞세운 창의IT융합공학과가 생겨났음은 물론이고,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미래창조과학부를 필두로 창의성을 선봉에 세 운 많은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는 기획서 제목에 창의성, 창조성만 포함된다면 통과된다는 농담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바야흐로 창의성의 시대다. 한때는 ‘창의성’ 대신 ‘스마트’, ‘소셜’이 있었던 것처럼 창의성 또한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을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현재 창조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소셜, 스마트처럼 몇몇 사례들로 인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산업 전반적인 그리고 노동 자체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에도 ‘IQ보단 EQ’라는 말과 함께 창의성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으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에 그쳤던 과거에 반해, 현재는 창의성을 통한 사회 전반적인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이 근간에는 현재 급속도로 더뎌진 산업의 전반적인 발전 속도가 위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 나아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창의성’을 통한 발전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이러한 것이다. 첫째, 창
문화 | 이승훈 객원기자 | 2013-06-05 18:10
“섣불리 믿어서는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의 키워드 두 개, 채선당과 국물녀. 140자의 짧은 글을 향한 성급한 믿음을 바탕으로, 비난은 SNS의 역기능을 따라 전국적으로 퍼졌고 많은 누리꾼들은,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쪽의 의견만을 믿고 다른 쪽을 몰아세웠다. 수많은 사람들의 글과 생각은 책임도, 이성적인 판단에 대한 양심도 없이 하나의 표적만을 향해 달려나갔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피해자와 피의자의 당혹스러운 역전극이었다.식당 종업원의 임산부 폭행과 방관하는 사장, 지나가는 아이에게 아무 이유 없이 커피를 끼얹는 아줌마, 상식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낯선 두 상황에 대해 그들은 이미 길들여진 ‘악인’ 설정의 프레임 속에서 너무도 빠르게 ‘악인’을 설정해 공격했다. 인간성에 대한 존중, 이성적인 판단은 결여되고 ‘그러니까 누가 나쁜 놈이냐’에 대한 타는 목마름, 성급함. 물론, 부인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범죄행위, 정치인들의 부당거래와 결탁들에 노출되어 지내왔고 그것은 우리를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악인의 설정에 익숙하도록 길들여 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
여론 | 이승훈 객원기자 | 2012-03-21 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