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8건)

아마 당신은 2000년 이후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멀티플렉스가 당신의 문화적 경험을 넓혀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보유한 많은 스크린이 소비의 측면에서는 영화 선택의 폭을 확장하고, 생산의 측면에서는 대중 상업영화부터 독립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의 생산을 확대해줄 것으로. 허나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더 좁아진 문화적 경험, 좁아진 영화 선택의 폭이다. 여덟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것은 여덟 개의 다른 영화가 아니라 복제 상영되는 하나의 영화일 뿐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8지선다가 아닌 1지선다, 단일문항뿐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있지 않다. 단지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있을 뿐이다.문화는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양식, 상징체계를 말한다. 그리고 문화산업은 좁게는 오락의 요소가 상품의 부가가치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산업을 의미하며, 넓게는 문화와 예술분야에서 콘텐츠를 창작ㆍ상품화ㆍ유통하는 모든 단계의 산업을 의미한다. 또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문화와 예술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을 문화산업의 주요 활동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이윤창출이 가능한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정신적 가치,

문화 | 이승훈 객원기자 | 2013-09-25 14:45

그러니까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은 창의성의 시대다. 우리대학에도 ‘창의성’을 앞세운 창의IT융합공학과가 생겨났음은 물론이고,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미래창조과학부를 필두로 창의성을 선봉에 세 운 많은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는 기획서 제목에 창의성, 창조성만 포함된다면 통과된다는 농담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바야흐로 창의성의 시대다. 한때는 ‘창의성’ 대신 ‘스마트’, ‘소셜’이 있었던 것처럼 창의성 또한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을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현재 창조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소셜, 스마트처럼 몇몇 사례들로 인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산업 전반적인 그리고 노동 자체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에도 ‘IQ보단 EQ’라는 말과 함께 창의성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으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에 그쳤던 과거에 반해, 현재는 창의성을 통한 사회 전반적인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이 근간에는 현재 급속도로 더뎌진 산업의 전반적인 발전 속도가 위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 나아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창의성’을 통한 발전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이러한 것이다. 첫째, 창

문화 | 이승훈 객원기자 | 2013-06-05 18:10

직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내일이 시험인데 전혀 공부하지 않은 나를 발견했을 때, 내일이 신문 기사마감인데 써놓은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소위 ‘멘붕’이란 단어로 쉽게 치환되는 이러한 상황들을 사실 우리 모두는 매일 겪고 있다.해결책은 꽤 간단하다. 그리고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어찌되었건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라는 진부한 조언. 이미 지나가버린 과오를 탓하기보다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 하는 게 훨씬 발전적이라는 것 따위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니 사실 나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순간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탈출하고자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내가 직면한 현실을 회피하려고 애써왔다.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이러한 현실회피는 사실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다.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인식하는 순간 내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기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려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보통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현실회피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실수나 잘못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는

78오름돌 | 이승훈 객원기자 | 2013-04-10 15:41

어느덧 수능 시험이 끝나고 수험생들이 분주 해지는 입시철이 다가왔다. 지금 수험생들에게는 자신의 수능 점수와 희망 지원대학과의 괴리가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겠으나 이맘때쯤이 되면 나는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겪곤 한다. 이른바 ‘수능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는, 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이 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많은 학생들이 입시철이 되면 자신이 겪어온 입시와 수능 점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맘때쯤에는 내 수능점수에 대해서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교와 성적을 고민하던 시절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던 감정들도 말하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왠지 허전한 것은 그 이후에 입시성공담에 필적할 만한 내 고유의 ‘성공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7여 년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많은 자기소개서를 써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들’,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던 기억’과 같은 많은 문항들을 채웠던 것은 언제나 ‘열심히 노력해서 명문대를 합격했다’라는 이 학교 모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진부한 성공담이었다.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흔히 들려오던 “내가 왕년에” 로 시작하는 과

78오름돌 | 이승훈 객원기자 | 2012-11-21 20:55

나는 너를 본다. 너는 나를 볼 수 있는가. 일방적인 시선, 관찰에서 시작되는 정보의 불균형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감시체계는 많은 영화들(특히 미래사회를 그리는 SF영화)에서 관습적으로 다루어지는 패턴이며 관객들은 작품 속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간극, 양쪽이 가진 정보의 불일치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에서 다루어진 첨단IT기술을 사용한 인간에 대한 정보적인 해부, “이퀼리브리엄”에서 표현된 감시체계로 무장된 전체주의적 제국의 모습, 영화 “가타카”에서의 유전자정보를 통한 인간에 대한 통제와 차별 등 이미 기존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거대권력(보통은 국가로 대표되는)의 인간을 향한 감시와 통제는 앞서 열거한 작품들 외에도 많은 작품들에서 묘사돼 왔다. 물론 최근 몇 년간의 놀라울 정도의 IT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인에 대한 사생활, 기본권 침해는 위험한 수준에 다다랐고 이로 인한 논란들 또한 지속적으로 야기돼 왔기 때문에 ‘감시 체계’를 다룬 작품들의 탄생배경을 많은 이들이 ‘IT기술의 발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나, 이러한 감시체계, 국가 내에 속한 개인에 대한 통제 및 관리에 대한 시각은 기술로 인

문화 | 이승훈 객원기자 | 2012-11-07 16:59

그러니까 난데없이 왜 ‘마블 코믹스’냐는 이야기다. 남자라는 동물들이 그렇다. 초등학생 때 드래곤볼을 보며 열광하고 고등학생 때 드래곤볼을 다시 보며 열광하고 대학생 때 다시 드래곤볼을 보며 열광하는 남자라는 동물들은 언제나 영웅물 혹은 만화들에 매료되어 있다. 그런 대부분의 남자들이 한때 미쳐있었던, ‘드래곤볼’의 명성이 무색하게도, 영화화된 ‘드래곤볼’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외면받았다. 제목답게 ‘마블코믹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드래곤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국내 관객에게 익숙한 일본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 맥없이 떨어져 나간 판국에 국내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웠던 미국 코믹스, 그것도 기존에 알고 있던 ‘슈퍼맨’, ‘배트맨’으로 이루어진 DC코믹스가 아니라 마블 코믹스의 ‘아이언맨’, ‘토르’라는 이름들이 어느새 한국에 자연스럽게 정착하여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한, 대체 ‘마블’은 어떤 곳인가. 마블 코믹스마블 코믹스는 영웅물을 주로 출판하는 미국의 만화 출판사이다. 대표작으로는 다들 알다시피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이 있으며 라이벌 격이라고 생각되는 DC코믹스와의 차이는 D

문화 | 이승훈 객원기자 | 2012-04-11 17:43

“섣불리 믿어서는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의 키워드 두 개, 채선당과 국물녀. 140자의 짧은 글을 향한 성급한 믿음을 바탕으로, 비난은 SNS의 역기능을 따라 전국적으로 퍼졌고 많은 누리꾼들은,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쪽의 의견만을 믿고 다른 쪽을 몰아세웠다. 수많은 사람들의 글과 생각은 책임도, 이성적인 판단에 대한 양심도 없이 하나의 표적만을 향해 달려나갔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피해자와 피의자의 당혹스러운 역전극이었다.식당 종업원의 임산부 폭행과 방관하는 사장, 지나가는 아이에게 아무 이유 없이 커피를 끼얹는 아줌마, 상식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낯선 두 상황에 대해 그들은 이미 길들여진 ‘악인’ 설정의 프레임 속에서 너무도 빠르게 ‘악인’을 설정해 공격했다. 인간성에 대한 존중, 이성적인 판단은 결여되고 ‘그러니까 누가 나쁜 놈이냐’에 대한 타는 목마름, 성급함. 물론, 부인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범죄행위, 정치인들의 부당거래와 결탁들에 노출되어 지내왔고 그것은 우리를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악인의 설정에 익숙하도록 길들여 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

여론 | 이승훈 객원기자 | 2012-03-21 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