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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춘기에게’. 이것은 이미 지나간 나의 사춘기에 대한 다소 새삼스럽고 때늦 은 호명이 아니라, 내가 대학에서 처음 강 의하게 됐을 때 한 학생이 자신의 ‘인생 노 래’라며 추천해 준 곡의 제목이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곧 보컬 안지영의 매력적인 보이스 톤과 어우러지며 ‘볼빨간사춘기(BOL4)’ 특유의 감성을 만들 어낸다. 그러면서 다들 아름다운 시절이라 고 입 모아 말하는 청년기의 시작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 도 언젠가는 그 아픔을 딛고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담하게 이야 기한다. 가사에 담긴 진솔함 때문일까. 이 곡은 발표된 지 7년여가 지난 지금도 마치 자기의 이야기 같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꾸 준히 사랑받고 있는 듯하다. 내게 이 노래 를 처음 알려준 학생도 자신이 대학에 와서 도 뚜렷한 목표가 생기지 않아 상상했던 것 만큼 멋진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있으 며, 아직 사춘기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 다며 이 곡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청년기는 실로 반짝이고 아름다운 순간들로만 가득 찰 수 있는 것일 까? 혹은 그래야만 온당한 것일까? 나와 함 께 글쓰기 과목을 들

노벨동산 | 김지윤 / 인문사회학부 대우조교수 | 2024-06-12 16:15

우리대학이 개교 이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다른 학과에도 비슷한 형태의 강좌가 있겠지만, 작년에 첫 입학생으로 출범한 반도체공학과의 학부 커리큘럼에는 신입생들을 위한 ‘새내기연구참여’라는 것이 있다. 학부 졸업 후 32년 만에 돌아온 모교에서 앞길이 창창한 후배들에게 연구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 주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다. 이공계 분야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최대한 흥미를 유발 할지 고민이 많던 찰나, 연구참여를 하는 한 학생의 소개로 이렇게 지면을 빌려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영광이다. 이 기회로 평소 연구에 대한 나의 지론과, 내가 지금껏 관심을 가져왔던 칼코제나이드 반도체 (Chalcogenide Semiconductor)에 대한 소개를 중심으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연구란 무엇일까? 요즘 유행하는 ChatGPT에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익숙한 사전들을 통해 먼저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한자로는 연마할 연(硏)과 끝을 다할 구(究)로 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영문

노벨동산 | 강대환 / 반도체 기금교수 | 2024-05-22 15:59

나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게임보이, 닌텐도 시대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콘솔 게임기를 경험해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게임의 세계는 해가 갈수록 놀랍게 발전해왔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과거도, 지금도 변함없이 체스다.체스에서는 가능한 수의 조합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각자 첫 3수만 둬도 총 900만 가지가 넘는 포지션이 나올 수가 있다. 4수를 둘 경우 무려 2,880억 가지의 상황이 가능해진다. 방금 내가 한 체스 게임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그렇게 진행된 경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게임임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수준의 재능이나 높은 위험 부담 없이 인류 최초로 뭔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물론 바둑과 같은 다른 형태의 보드게임도 가능한 수순의 조합이 엄청나게 많지만, 체스 말의 모습과 분위기 때문에 나에겐 체스가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체스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점은, 체스를 두며 겪는 수많은 상황이 내 인생 속 교훈이 돼준다는 것이다. 흔하디흔한 진부한 얘기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명백한 사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벨동산 | Joshua Prigge / 인문 대우강사 | 2024-04-22 17:40

이 글에는 영화 ‘아바타2’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벌써 일 년도 넘게 지난 일인데, 첫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다음에 아내와 같이 극장에서 아바타2를 관람했다. 팬데믹 그리고 육아 때문에 아내와 단둘이 극장에 간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영화는 내가 예상한 만큼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주인공의 아들이 죽은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됐다. 그 와중에도 영화표 가격이 생각나서 ‘엔딩은 보고 나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주인공 아들의 장례식 장면에서, 주인공은 판도라 행성의 초지성체 ‘에이와’에 자신을 연결한다. 그리고 이제는 죽어버린 자신의 어린 아들이 즐겁게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순간 그 아들이 다 큰 모습으로 주인공 앞에 나타나서 “아빠는 왜 울고 있어요?”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서”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 이후로는 더 이상 영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극장에서 정신없이 울었다. 오전 시간이라 극장에 사람이 많지 않아 다

노벨동산 | 이재필 / 수학 대우조교수 | 2024-03-22 18:40

어느 날 학과의 선배 교수님께서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하셨다.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이자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캐럴 계숙 윤이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을 주제로 쓴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가 아름다웠고, 제목 또한 흥미로웠기에 나는 금세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이 책은 생명의 분류에 기본이 되는 수많은 규칙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자연의 체계’라는 생명의 세계 전체를 체계화한 칼 린나이우스(칼 린네)로부터 △수리분류학 △분자분류학 △진화분류학으로 이어지는 분류학의 발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 분류학이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 점차 분류학자들의 주관적인 분류로부터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한 현대분류학으로 발전했고,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객관적이지만 불행히도 우리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세계와 단절시키는 비극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단적인 예는 바로 ‘물고기의 죽음’이다. 진화분류학적으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정확한 분류군이 아니다. 진화분류학은 생명 진화 계통수 하나의 완전한 나뭇가지, 즉 한 조상의 모든 후손을 포함하고 다른 것은

노벨동산 | 김종흠 / 생명 조교수 | 2024-02-29 20:04

집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소고기뭇국을 끓이게 된다. 때마침 오늘 저녁에도 오색 현미와 카무트를 적당히 넣어서 고슬고슬 지은 잡곡밥과 함께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소고기 양지 국거리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서 살살 볶다가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얇게 깍둑썰기를 한 무와 표고버섯도 함께 넣고 조금 더 볶는다. 그러다가 다진 마늘, 국간장을 조금 넣고 센 불에서 얼른 버무리다 물을 붓고 팔팔 끓인다. 떠오르는 거품을 가볍게 걷어내고 혹시라도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약간 해 준 다음 콩나물을 조금 넣고 한소끔 끓이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고기뭇국이 완성된다. 어렸을 때의 식탁을 떠올리면 항상 이 소고기뭇국의 향과 맛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가끔 올라오던 갈치구이, 몇 종류의 나물과 함께 이 소고기뭇국은 식탁에 도란도란 둘러앉은 이미지,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와 함께 진한 맛과 향으로 어린 시절 내 삶의 풍경 한편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직접 음식을 해 먹는 나이가 돼서도 이 소고기뭇국은 옛날 어머니가 끓이던 걸 어깨너머로 본 방식 그대로 끓이게 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내가 끓인 국은 어릴 때 먹던 그 맛과 뭔가

노벨동산 | 서종철 / 화학 조교수 | 2024-01-01 20:01

“제가 어떤 분야 연구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은 언제부터 지금의 진로를 정하셨어요?”학부생들과의 면담에서 항상 듣는 말이자,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할 순 없다. “저도 제가 어떤 연구를 좋아하는지 몰라요”라는 대답은 너무 멋이 없다. 학생들 앞에서 ‘확실한 이상을 가지고 뚝심 있게 나아가는 교수’처럼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내 입을 막는다.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나는 보통 차선을 택한다. 학부 연구참여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구 분야를 계속해서 바꿔온 역사를 얘기해주는 것이다. 나도 모른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우아한 방법이라 자평한다. 단점은 말이 길어져서 상담 때마다 반복해서 들려주기 피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면에서 짧게 소개하고, 앞으로는 이 기고문을 읽으라고 말해줄 예정이다.나는 학부 전공을 결정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물리를 좋아했는데, 남들보다 잘할 자신은 없어서 포기했다. 다른 학과에서 어떤 걸 공부하는지 잘 모르니까 무학과 기간에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학과 기간은 MT에 몇 번 다녀오고 나니 정말 쏜살같이 끝났고, 전공 선택의 시간이 코앞으로 닥쳐왔다. 아직도 내

노벨동산 | 이재호 / 전자 조교수 | 2023-12-05 20:51

정교한 기계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자 인간만이 가진 삶의 특권이다. 나는 매년 학부생들에게 추상적인 자동기계를 만들고 그 특성을 탐구하는 계산이론 과목을 가르친다. 수업 시간에 다루는 기계는 형식적인 기호들로 부품과 동작이 정의되는 추상적인 기계일 뿐이지만, 주어진 법칙하에서 사용 가능한 부품들을 조립하고 기계를 만드는 원리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인 기계와 원칙적으로 다를 게 없다. 이런 정교한 기계를 탐구하는 작업이 우리 삶과 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까? 20세기 중반에 이 순수한 이데아 세계 속에서 어떤 보편 계산 기계 하나가 발견됐고, 그것이 다양한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우리 앞에 존재하는 컴퓨터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 역사적 신화를 들려줄 때면, 나는 어느새 관념론자가 돼, 학생들에게 ‘정신’과 ‘물질’ 중에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이라 생각하는지를 던지듯 물어보곤 한다. 이때, ‘당연히 물질이 근본적이고 모든 것들을 환원적으로 설명한다’는 통속적인 답변을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학생들을 위해, ‘기계’에 관련한 몇 가지를 끄적여 본다. 기계의 기능은 ‘개별부품의 기능이 무엇이었는지’와 ‘그들이 어떤 구조로 결합돼있는

노벨동산 | 조민수 / 컴공 부교수 | 2023-11-07 20:34

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할 때 “저는 열유체를 연구하는 기계공학과·원자력공학과 소속의 교수입니다”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나의 전공을 대표하는 말은 ‘열유체’인데, 솔직히 말하면, 20년 전의 나는 저런 단어가 세계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의 내가 20년 전의 내게 답하자면 ‘열유체’라는 건 ‘열이라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뜨겁다 혹은 차갑다의 기준이 돼주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액체 혹은 기체 상태의 유체 전달’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추상적인 설명이 20년 전의 내게 이해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로 나는 20년 전에 우리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생이었고, 몇 년 후에는 실제로 그 목표를 이뤄 아주 만족스럽게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본인이 고등학교 때까지 원하던 어떤 목표가, 대학에 들어와서 실제로 배워보니, 그저 존재하던 그 분야에 나 자신이 무언가 판타지를 만들어 좇아온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사람들이 깨는 순간이 가끔 있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책상을 발로 차면서 깨듯이, 적당한 습도와 시원한 온도를 만끽하면서 귓속에서 나오는 리듬을 타고 달리던 가운데에 갑자기 멈춰 서듯, 그렇게 갑자기 깰 때가 있다. 아주

노벨동산 | 조항진 / 기계 부교수 | 2023-09-06 11:52

내 전공인 식민지 시대 소설은 밀도 높은 국문학 연구사가 축적돼 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연구사의 벽에 좌절도 했고, 논문 주제를 잡기 위해 집을 나오기도 했다. 눈에 밟히는 어린 딸을 돌보며 논문 쓰기가 쉽지 않아서, 육아를 하더라도 밤에는 논문을 쓸 개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살고 있던 아파트 바로 앞에 독서실 같은 공부방을 얻었다. 생활과 공부의 분리라는 명목으로, 신림동의 15만 원짜리 월세방을 얻어 출퇴근했다. 이때 몇몇 학교에서 전공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나에게 강의는 하루 종일 갇혀있던 작은 공부방을 탈출할 수 있는 합법적 외출로, 출력한 소논문의 박제된 지식을 누군가와 토론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의 장이었다.박사 논문을 쓰면서 가장 오래 한 수업은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의사소통 과목으로 읽기와 쓰기, 토론이 필수적으로 병행된다. 5학기 정도 지나니, 어느 날 문득, 강의실에 앉아 있는 신입생들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부단히 글을 썼던 식민지 작가, 유진오, 이효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고뇌 어린 열정과 치기 어린 자부심, ‘문청(文淸)’의 성립, ‘지(知)’의 자율성과 같은 박사 논문의 주제가 떠올랐고 192

노벨동산 | 백지혜 / 인문 대우부교수 | 2023-05-19 10:21

기존의 체계를 새로이 전복적으로 재편성하는 이른바 ‘와해적 기술’로서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탈근대시대의 철학 및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신뢰 가능한 매개자 없이 P2P 네트워크 방식에 기초하는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바로 탈중앙화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신뢰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기능함으로써 기존의 중앙화된 체계에 대한 혁신적 균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능정보사회에서 더 심화하는 데이터의 중앙화에 대한 시민사회에서의 우려는 탈중심적이고 분배적인 네트워크로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 통제권을 분산시키는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청이 강화돼 온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이는 기술적 자유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프라이버시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권리 주장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중화와 자유주의적 권리 주장은 인터넷 기술을 배경으로 하는 사이버펑크 운동으로 전개 및 발전되기도 했다. 사이버펑크는 개인의 사적 자유를 확보하고 정부 권력을 약화시키며 그 운영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있어, P2P 기술과 암호화를 유용

노벨동산 | 정채연 / 인문 대우부교수 | 2023-03-01 21:21

10여 년 전만 해도 처음 보는 이에게 내 전공을 말해야 할 때면 매번 듣는 질문이 있었다. “심리학이요? 그럼 제 마음도 읽을 수 있나요?”, “저는 무슨 혈액형 같나요?” 그때마다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이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심리학에선 무엇을 다루는지에 대한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놔야 했다.재작년 여름, 10년여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동네 작은 서점에도 심리학 코너가 생겨 있었고, MBTI 성격유형 검사는 유행을 넘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다. △소비의 심리학 △부의 심리학 △연애의 심리학 등 다양한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최근 가장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제는 행복의 심리학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나왔다. 행복의 심리학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서 다시 한번 기대를 저버리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캠핑을 가고 주중에는 매일 아침 영어학원을 다니는 자기 계발 속에서 행복이 따라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삶은 종종 어렵고 고

노벨동산 | 서지현 / 인문 조교수 | 2023-02-17 22:31

코로나19가 일상이 된 지 어언 3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에서 위험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대면 접촉과 사회적 교류는 위험 대상이 됐고, 마스크 착용은 필수로 자리잡았다. 비대면 업무와 미팅이 확대됨에 따라 사이버 범죄, 해킹의 문제도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또한, 팬데믹 동안 통제하기 어려웠던 일회용 제품의 무분별한 사용은 지난 2016년 발효된 파리협정 이후 국제사회의 핵심 논제로 자리 잡은 기후변화 위험을 증대시켰고, 고온, 폭우, 태풍 등 극단적 자연재해의 발생 등으로 이는 더욱 시급한 국제과제로서 논의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상에서의 위험에 관한 인식을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크게 증가시켰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 발간한 저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를 통해 위험이 인간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됨을 논했다. △과학과 기술 발전 △급속한 경제성장 △환경에 관한 경각심 부족 등과 함께 형성된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에서의 위험은 인간 사회 패러다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현 사회는 어느새 울리히 벡이 정의한 위험사회로 이미 진입한 듯하다.현재

노벨동산 | 정광민 / 산경 조교수 | 2022-12-10 01:42

올해 여름 박사 학위를 받고 포항 바다를 처음 마주했다. 언제 놀러 오면 물회와 과메기를 사겠다며 보스턴과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공수표를 날렸다. 짧은 방학은 금방 끝나버렸다. 곧 우리 포스테키안들에게 ‘한국과학기술사’와 ‘한국근현대사의 이해’라는 수업을 가르치기 위해 무은재기념관의 낯선 강의실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교육 경험이 일천한 내게 수십 개의 영롱한 눈동자는 자못 부담이 됐다. 그래도 내겐 나름대로 미리 생각해 둔 목표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무리한 부담을 지우지 않으며 그들의 전공 너머에도 꽤 흥미롭고 알 가치가 있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느끼게 도와주는, 그런 교양 수업 혹은 과학기술학 부전공 수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그러나 그럴듯한 목표도 초보 교수자의 미숙함을 가릴 수는 없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무엇보다 수업 시간 75분을 계획한 바대로 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기 일쑤였다. 호기롭게 어떤 사전 지식도 상정하지 않고 수업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으리라 과신했건만, “여기까지는 고등학교 때 배우셨죠”라든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따위의 말을 무신경하게 내뱉고는 혼자 지레 뜨끔한 적도 한두

노벨동산 | 이종식 / 인문 조교수 | 2022-11-13 01:15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는 오즈의 마법사가 가진 마법을 사용해 고향 캔자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대해 보였던 마법사의 실체는 늙은 공학자였음이 폭로되고, 공학자가 오랫동안 만들었다는 열기구를 함께 타려 했지만, 이마저 타지 못하게 된 도로시는 크게 낙심한다. 이런 도로시에게 착한 마녀는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이미 도로시 안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내 집같이 좋은 곳은 없어”라고 말하며 발뒤꿈치를 마주치는 간단한 행동을 통해 도로시가 고향으로 귀환하며 이 동화는 끝난다.오즈 사람들이 공학자가 만든 기술의 산물을 마법이라 생각했다는 것은 그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다. 공상과학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자 아서 C. 클라크는 “앞서가는 기술은 마술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생각해 보면 많은 혁신적 기술들이 처음엔 초자연적 마술의 모습으로 등장해 우리를 매혹하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쥐고 있는 듯 군림한다. 그러다 점차 많은 사람에게 과학적 원리가 폭로되거나 이해돼 기술의 지위는 낮아져 상식이 된다. 기술 혁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노벨동산 | 장수영 / 산경 교수 | 2022-09-14 20:19

나는 포항에서 태어나 지곡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는 포항 밖의 세상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이 있어 어디가 됐든 대학은 무조건 포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부터 우리대학은 나에게 특별했던 것 같다. 과학 잡지나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나 전기로 사람의 목소리와 영상이 전달되는 원리 등 과학, 공학에 관심을 두게 됐고,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을 특히 좋아했다. 학구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우리대학 캠퍼스를 지나다니며 저 건물에서 지금 어떤 새로운 과학 기술을 만들고 있을까 상상했다. 학부 전공으로 물리학을 선택했는데 당시 우리대학 물리학과 학부생이었던 과외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사실 물리는 제일 자신이 없는 과목이었다.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던 물리 개념들과 사고의 흐름을 바로잡아 주셨고, 시간이 걸렸지만 점차 물리 공포증을 극복하게 됐다. 물리를 전공하면 나중에 뭐든지 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어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우리대학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게 됐다. 고등학교를

노벨동산 | 김종환 / 신소재 조교수 | 2022-06-20 00:12

“막대와 돌로 내 뼈를 부러뜨릴 수 있지만, 말로는 나를 다치게 하지 못한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뼈 때린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어르신들은 혹 ‘골 때린다’의 유의어라고 착각할지 모르나, 골 때리는 일은 어이없는 상황에서 쓰이고, 뼈 때리는 건 지나치게 솔직한 말로 정곡을 찌르는 일. 유의어로 ‘돌직구’와 ‘팩트 폭력’이 있다. 이들은 모두 글자 그대로 말의 폭력성을 가리킨다. 영국 속담도 상대가 아무리 험한 말로 위협하고 야비하게 조롱해도 무시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지, 정말 내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작년 말에 나는 포스텍 문명시민교육원 원장이 됐다. 지난 2019년 개원한 이래, 소설가 김훈을 필두로 △윤태호 △유홍준 △공지영 △은희경 △김기문 △성영철 △정재승 △손숙 △장사익 △승효상 △유현준 △반기문 등 삼척동자도 다 아는 명사들을 초청해 수강 신청을 시작하자마자 국제관 국제회의장이 전석 매진됐다는 포항의 전설, 문명시민강좌가 바로 교육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덜컥 일을 맡기는 했으나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고, 무엇보다도 과연 내가 문명 시민이기는 한지조차 자신이 없었다.‘문명’하면 세계 4

노벨동산 | 우정아 / 인문사회학부 부교수 | 2022-05-02 22:59

작년 12월에 컴퓨터공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당시에도 코로나19 사태로 내가 있던 미국, 고향인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입국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자가격리도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추운 겨울 날씨에도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그로부터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포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거 공간이 생겼고, 우리대학 학식도 먹었고, 버거킹과 테라로사도 가봤다. 포항의 여러 가게를 들른 것만으로도 포항 주민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포항에 머무른 기간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잘 적응한 것 같다.시기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연구원을 할 때, 그중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코로나19가 유행해 많은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포항 새내기 조교수로서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포항에서 가보지 못한 곳도 수두룩하다. 포항 곳곳을 방문해보는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이후로 미루게 될 것 같다. 이런 점은 슬프지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한적한 곳에서 사진도 찍을 수

노벨동산 | 백승환 / 컴퓨터공학과 조교수 | 2022-03-27 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