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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에는 개교와 더불어 설립된 인문사회학부가 있다. 사정이 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인문사회학부의 존재를 잘 모른다. 교양 과정에 해당하는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면 인문사회학부에서도 연구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터라, 내 주요 연구 성과를 소개해 달라는 이 기회에 인문학자의 연구가 갖는 특징도 함께 말해 보고자 한다.문학, 역사, 철학을 망라하는 인문학 분야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혼자’ 연구한다. 실험 장비를 쓰지 않으니 실험실도, 실험실을 운영할 보조 인력도 필요 없다. 물론 연구실은 있어야 한다. 컴퓨터를 쓸 책상을 놓아야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연구 자료에 해당하는 온갖 책들을 손 닿는 곳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자의 연구실은 작은 도서관이다. 내 연구실에도 7천여 권의 책들이 분야별로 나뉘어 사방 벽면의 천장까지 닿은 책장들에 가득히 꽂혀 있다. 컴퓨터에도 전자책과 논문들이 여러 폴더에 가득하다.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수많은 학술지 논문들과 옛날의 신문 자료들 또한 인문학자의 연구 자료이다. 이런 자료들,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해서 인문학자는 혼자 연구한다.한국 현대문학 연구자

학술 | 박상준 / 인문 교수 | 2023-04-17 19:38

가을빛도 스러져 가는 이때,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한다. 50만 명에 가까운 대입 수험생들에 비하면 포스테키안은 행복하다. 소속 대학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편입을 생각하는 많은 다른 대학의 학생들에 비해도 그렇고, 대학 1학년을 마치자마자 취업 준비에 내몰려 대입 수험생 때보다 더 간절하게 공부(?)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학생에 비해도 그렇다.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행복하다. 대학 시절에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경험해야 할 것들을 웬만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가끔 눈을 감고 이 행복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진 것에 감사 할 수 있고 그것을 더 잘 누릴 수 있다. 미래를 계획할 때도, 현재의 만족스러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때 기쁘게 기운차게 그럴 수 있다. 이렇듯, 미래를 위해 건강하게 도약하기 위해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청춘은 머무는 시기가 아니며 대학 4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머지않은 미래에 여러분들 모두 캠퍼스를 떠나 세상의 파도를 타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캠퍼스의 행복한 시간을 잘 활용해 캠퍼스 밖의 생활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캠퍼스 바깥

노벨동산 | 박상준 / 인문 교수 | 2020-11-27 16:50

어슐러 르 귄(1929~)은 생존하는 최고의 SF 작가이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본격문학/대중문학의 이분법에서 자유로웠다면 노벨문학상이 주어져도 한참 전에 주어졌을 만한 작가이다. 1969년에 발표된 『어둠의 왼손』(시공사, 2002)만으로도 그녀는 그럴 만한 지위를 획득했다. 『어둠의 왼손』은 ‘사람들은 어떻게 교류(해야)하는가’라는 본원적인 문제를 유연하게 탐구함으로써 인류 문화에 대한 문학의 기여를 도탑게 해 주었다.행성 겨울의 왕국 카르하이드의 총리대신이었던 ‘에스트라벤’과 우주 연합체인 에큐멘의 엔보이[사절]로 행성 겨울을 찾아온 지구인 ‘겐리 아리’ 사이의 교류가 소설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에큐멘에 행성 겨울도 합류하여 서로 교류를 갖자는 제안을 안고 온 ‘겐리 아이’와, 그의 존재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게센인들 사이에서 확인되는 여러 가지 차이들, 이 차이를 살펴가면서 존재들 간의 소통, 교류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게 하는 작품이다. 이 부분이 소설의 육체를 이룬다. ‘겐리 아이’를 신뢰하고 그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려다 반역자로 몰려 카르하이드에서 추방되는 ‘에스트라벤’과, 마찬가

문화 | 박상준 / 인문 교수 | 2014-09-03 18:30

요즘 널리 읽히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는 ‘인생시계’라는 개념이 나온다. 우리의 80년 인생을 24시간으로 환산해보는 것인데, 그 결과는 놀랄 만하다. 대학 초년생인 20세는 오전 06시 시점에 해당되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30세라야 겨우 아침 09시에 해당되며,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들 여기는 50세라 해도 인생시계는 고작 오후 3시를 가리키는 까닭이다. 오후 세 시경에 오늘 하루를 뭔가 의미 있게 만들어볼까 하여 각종 이벤트를 궁리해 보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면, 50세가 겨우 오후 세 시임을 알려주는 인생시계란 개념은, 현재에 급급해 있는 우리들에게 긴 안목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인생시계’ 개념이 잊히지 않는 것은 그와 비슷한 생각을 줄곧 해왔기 때문이다. 교단에 설 때마다 나는, 내 강좌의 내용과 형식이 앞으로 60년을 더 살게 될 수강생들의 ‘길고 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식한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궁리하고 공부하면서 다소간 안정적인 틀을 갖추고 있지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새롭게 고심한다. 학사제도상 교양교육으로 분류되는 교과들

노벨동산 | 박상준 / 인문 교수 | 2012-06-07 16:55

< 다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P군에게.문학에 대한 몇 가지 상념을 전하는 일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네.문학의 정체를 잘라 말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무엇인가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네. 한 가지 문학관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문학의 다양한 얼굴에 골고루 시선을 던지는 것이 현명하리라 했지. 다소 막연한 이러한 전제에서 우리는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문학의 시선을 살펴보았네. 그러면서 ‘운동으로서의 문학’과 ‘작품으로서의 문학’이 보인 다채로운 면모를 시공간적으로 간략히 훑어보았네. 그 결과로 우리는, 인간의 자유로운 면모를 확장하고 사회의 잊혀진 것들을 복권시키며 역사를 재구성하거나 보편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문학의 갈래들을 정리해볼 수 있었네. 끝으로 우리는 휘황찬란한 대중문화의 한 영역인 대중문학 곧 ‘유흥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시대 문화활동의 특징에 대해서도 짚어보았네. ‘따라하기’와 ‘과시하기’가 그것이었지.P군, 이 시점에서 나는 진부한 질문 한 가지를 다시 떠올리네. 바로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네.자네를 포함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깔려 있는 것이 바로 ‘

문화 | 박상준 / 인문 교수 | 1970-01-01 09:00

1 근대문학, 인간성 해방의 이야기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문학이 갖고 있는 여러 측면 중 어느 것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한편에서는 문학의 역사 전체에 걸쳐 재미와 유흥을 보아왔다. 다른 한편으로 전근대 사회에서 예술로 인정된 문학들은 대체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을 전파하는 기능 면에서 주목되었다.이러한 사정이 바뀌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이다. 이제 문학은,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기능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진실을 파헤치는 주요한 장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좀더 나아가서는, 미지의 것을 탐구하여 진실을 확장하는 것이 문학의 몫으로 여겨지게도 되었다. 이때 근대문학이 탐구의 대상으로 놓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이고, 이 자리에서 살펴볼 ‘인간’이 다른 하나이다.근대문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인간 탐구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탐구의 대상이 될 만큼 인간의 본질이 알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 첫째이고, 그러한 탐구 자체가 인간성을 발양·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것이 둘째이다. 말을 바꾸자면, 문학을 통해 인간을 알아나가면서 새

문화 | 박상준 / 인문 교수 | 1970-01-01 09:00

1. 공상과학소설과 SF, 무협지와 무협소설문학에 대해서 공정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는 밤하늘의 달과 별 같은 그러한 문학의 성좌가 흩어진 지 오래된 까닭이다. 전문가들의 문학비평에서부터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런 저런 문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보면, 그 각각이 그리고 서로가 한자리에서 논의하기 어려울 만큼 분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사람 수만큼 많은 문학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비평가와 대중들이 소통 불가능한 상황에 빠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이제는 적지 않은 작가들까지도 저들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다. 약간 비관적으로 그리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작품의 생산과 수용, 전달을 아우르는 문학 활동의 주요한 주체들이라 할 작가, 독자, 비평가, 연구자들이 각기 핵분열을 이루면서 상호간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본격문학 문인과 대중문학 문인은 견원지간 상태에 있고, 대중들은 대중들대로 ‘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문학 활동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현재의 상황을 강조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정이 새로운 것만은 아니

문화 | 박상준 / 인문 교수 | 1970-01-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