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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는 오즈의 마법사가 가진 마법을 사용해 고향 캔자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대해 보였던 마법사의 실체는 늙은 공학자였음이 폭로되고, 공학자가 오랫동안 만들었다는 열기구를 함께 타려 했지만, 이마저 타지 못하게 된 도로시는 크게 낙심한다. 이런 도로시에게 착한 마녀는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이미 도로시 안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내 집같이 좋은 곳은 없어”라고 말하며 발뒤꿈치를 마주치는 간단한 행동을 통해 도로시가 고향으로 귀환하며 이 동화는 끝난다.오즈 사람들이 공학자가 만든 기술의 산물을 마법이라 생각했다는 것은 그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다. 공상과학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자 아서 C. 클라크는 “앞서가는 기술은 마술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생각해 보면 많은 혁신적 기술들이 처음엔 초자연적 마술의 모습으로 등장해 우리를 매혹하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쥐고 있는 듯 군림한다. 그러다 점차 많은 사람에게 과학적 원리가 폭로되거나 이해돼 기술의 지위는 낮아져 상식이 된다. 기술 혁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노벨동산 | 장수영 / 산경 교수 | 2022-09-14 20:19

과학기술은 인류가 처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이 사실을 묘사할 때, 우리는 ‘싸움’, ‘정복’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들은 기아와 질병 같은 역경들과 인간이 싸워 승리했다는 표현인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조금 어색하다.싸움엔 서로 의지를 거스르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과학기술의 경우 그 과학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은 ‘자연(自然)’이고, 그 자연은 문자 그대로 그냥 거기에, 자기(自)의 원리에 따라 그렇게(然) 있는 것이지 어떤 의지를 갖추고 인간과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생각해보면, 과학기술과 그 과학기술이 적용되는 자연 간에는 어떤 대립도 싸움도 없다. 특정 물질에 생명체는 이렇게 저렇게 반응할 뿐이고, 힘을 가하면 물질은 이렇게 저렇게 변형될 뿐이지, 그 생명체나 물질이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거나 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과학기술을 소유한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그 과학기술의 사용을 제한할 수는 있다. 이 경우, 그 과학기술을 가진 자는 못 가진 자가 그 과학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 곧 힘을 갖게 된다. 이런 경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있을 수 있는 의지의 충

노벨동산 | 장수영 / 산경 교수 | 2018-03-28 13:21

수학적 사고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수학적 사고 덕분에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꽃피웠고, 우리는 그 문명의 열매를 향유한다. 그런데 그 열매의 향유가 공짜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사실 깊은 생각 없이 수학을 생각하면, 수학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과 같은 ‘조용한’ 명제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조용하다’는 형용사를 사용한 것은 그 명제들이 어떤 주장도 담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하지도 않는 듯 하다는 뜻에서 선택한 말이다. 도대체 수학이 무슨 주장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단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습긴 하지만 따끔한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현대 기술과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대한 까칠한 비평으로 유명한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은 “미국인들이 현대 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라고 탄식한 적이 있다. 사실 매우 유용한 도구나 연장은 그 주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듯

여론 | 장수영 / 산경 교수 | 2010-05-05 00:03

짝퉁 액세서리, 짝퉁 티셔츠, 짝퉁 헨드폰, 이젠 짝퉁 자동차까지 있는 세상이다. 거의 모든 명품은 십중팔구 어디엔가 짝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짝퉁이 있어야 명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 그런지 삼성 헨드폰, 현대 자동차의 짝퉁들이 유통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해당 한국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가 적잖이 걱정이 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다. 이제는 우리도 명품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 정서 때문일까? 한국 대표 상품을 모방하는 중차대한 사기 사건을 보도할 때 ‘불량 유사품’, ‘위조품’이라는 ‘무거운’ 단어보다 ‘짝퉁’이라는 ‘깜찍한’ 느낌의 단어가 월등히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본다. 사실 짝퉁은 애초부터 짝퉁이라 드러내놓고 있거나 숨기고 있더라도, 너무 늦지만 않게 짝퉁임이 드러난다면 그리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한국의 수출산업 발전 초기에 ‘Made in Korea’를 달고 세계로 처음 수출된 제품들은 사실 “모양과 질에서 진품과 거의 같지만, 가격은 월등히 저렴한 짝퉁입니다”라고 처음부터 알리고 나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우는 크게 문제삼을 것도 없다. 또한 짝퉁임을 숨겼더라

여론 | 장수영 / 산경 교수 | 2006-04-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