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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뚫고자 한 광주민중항쟁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에 대해 지금까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많은 진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왜 그러하였으며’, ‘왜 하필이면 광주이었는가’의 문제는 지금도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더구나 세계적 차원에서의 지식정보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하는 요즈음에 그러한 질문은 자못 진부하거나 해묵은 것을 들춰낸다는 질시를 받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당대를 정리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자신있게 맞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광주에서 국가폭력이 왜 있었는가? 우리 민족의 대다수는 해방과 분단.전쟁을 겪게 되면서 ‘예속과 독재와 매판’의 강요된 희생을 당하였다. 우리 국민의 여망은 ‘자주와 민주와 자립’이었다. 이것은 1970년대 들어 활발히 일어난 반유신민주화운동과 민중생활권운동이 1979년 10월 부산, 마산에서 집약되어 폭발하였고 그 결과 박정희가 죽음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그러나 12.12 이후 유신체제를 연장하려는 음모가 구체화되면서 민주화세력과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것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광주도 그 한 곳이다. 유신연장세력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

학술 | 이종범 (조선대 교수 / 한국사) | 2000-05-24 00:00